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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도깨비풀

 

막바지 가을걷이다. 서리를 맞고서야 제대로 영근다는 서리태다. 거름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토양이 서리태와 맞지 않는 때문인지 줄기만 무성하고 실속이 별로 없다. 파종을 하고 잎이 너무 무성해서 세 번이나 순주기를 했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

순주기 할 때는 저렇게 잎과 줄기를 잘라내고 콩이 제대로 크기나 할까하는 조바심과 하늘이 키우는 농사를 이렇게 무참히 잘라도 되나하는 미안한 마음에 망설이곤 했는데 막상 수확기가 되니 키만 웃자라고 줄기만 무성하여 일만 많지 정작 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밭둑 척박한 땅에서 마디게 자라던 콩은 키가 작고 줄기마다 콩을 다복하게 매달아 보기에도 탐스럽다. 팥도 콩과 같은 상황이다.

거름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고구마도 잎이 어찌나 좋은지 많은 수확을 기대했는데 땅 속으로 줄기만 많이 내렸지 막상 고구마는 별로 없다.

밑거름도 상황에 맞게 해야 하고 작물 선택도 토양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도로변 텃밭이라 토양도 좋고 농사도 잘 되던 땅이었는데 옆에 3층 공장이 생기고부터는 그늘이 져서 영 농작물이 시원찮은 것 같아 속상하다.

덤불만 무성한 콩을 수확하고 이삭을 줍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남편은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는데 적당히 하라고 핀잔을 주지만 농사가 그렇지가 않다. 지인들과 나누는 재미도 있지만 콩 하나라도 보면 줍고 챙기게 된다. 이것이 농사꾼의 마음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주운 이삭이 한 됫박도 안 되지만 그래야 제대로 농사일을 끝낸 기분이다.

김장도 했고 마지막으로 콩까지 수확했으니 올 농사는 끝이다. 비닐을 걷어내고 덤불을 긁어 불도 놓았다. 밭을 한 바퀴 돌아보며 많든 적든 이것저것 마다않고 길러낸 밭이 고맙다.

연장을 챙겨 나오다보니 바짓가랑이에 도깨비풀이 잔뜩 붙어 있다. 털어도 잘 떨어지지 않아 하나씩 떼어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도깨비풀은 사람의 몸이나 다른 것들에 의지해서 포자 번식을 한다고 한다. 풀씨의 모양을 보면 끝이 뾰족하고 집게처럼 생겨 어디든 달라붙기 좋게 생겼다. 생명력도 강하다. 눈에 뛸 때마다 뽑아낸 것 같은데 간혹 보인다. 옷에 붙은 풀씨를 떼어 던진 자리에 내년에 또 풀이 자랄 것이고 이렇게 종족을 유지해 가니 지혜로운 풀이다.

우리는 세상의 그늘진 곳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사람을 잡초에 비유하곤 한다. 돌봐주지 않아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잡초는 자라고 번식한다. 가뭄에 농작물은 타들어가도 잡초는 살아남아 열매를 맺고 스스로 종족을 번식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네 민초들의 삶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질경이를 좋아한다. 주로 길가에 서식하면서 밟히면 밟힐수록 고개를 쳐들고 올라와 결국은 꽃을 피우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자연이다. 얼마나 밟히고 나면 저처럼 꼿꼿해질 수 있을까. 이렇듯 처해진 환경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질경이는 질경이답게 도깨비풀은 도깨비풀답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이 자연이다. 마음 둘 데가 없는 요즘 자연을 닮은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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