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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미국 대통령과 맞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그는 늘 카키색 군복 차림으로 대중 앞에 선 것으로 유명하다. 까닭은 혁명을 ‘미완’으로 자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9년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는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과 만나게 될 것이다. 지옥의 뜨거움 같은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계속 기다려온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그는 ‘미완의 혁명’을 핑계로 반세기 동안 독재를 펼쳤다. 또 미사일 사태로 미국과는 완전히 적국이 돼 버렸다. 혁명 동지인 체 게바라도 그의 곁을 떠났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통해 혁명의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평소 헤밍웨이에 대한 존경이 대단했다. 특히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를 완성하고, 1954년 노벨 문학상까지 타자 더욱 그랬다. 하지만 혁명 이후 헤밍웨이마저 미국으로 쫓아냈다. 얼마 안돼 소련이 붕괴했고 러시아의 원조마저 끊겨 고립무원 지경에 빠졌다. 모두 쿠바가 혁명과 독재의 이미지로 각인된 원인들이다.

카스트로는 끊임없이 암살 기도에 시달렸다. 독 묻은 시가, 치명적 병균에 오염된 수영복까지 동원됐다. 모두 미국의 공작품(工作品)들이다. 그는 지난 2000년 기자회견에서 쿠바 망명단체와 미국 CIA로부터 600여 차례나 암살 위협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로 부터는‘쿠바를 국민들에게 돌려준 영웅’이라는 호칭과 함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혁명가는 은퇴하지 않는다”며 지난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직과 군 통수권을 동생 라울에게 물려 줄때 까지 52년간 권좌에 있었다. 덕분에 세계최장 국가원수 기록도 세웠다.

쿠바 혁명의 상징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간)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2차대전때 연합국이었고, 6·25 때도 우리에게 유엔 구호물자를 보낸 우방을 ‘독재의 그늘’속 ‘빈곤의 나라’로 만든 그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었나 보다./정준성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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