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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꽃샘, 시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청명했고 햇발은 더 없이 포근했다. 라일락 망울이 부풀고 꽃다지가 좁쌀만 한 노란빛을 물고 있던 봄길을 떠올리면서 가볍게 입고 나섰다. 집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안과는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 더듬거려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병원은 어두침침했고 환자들도 별로 없었고 직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접수대에 한 사람이 앉아있어 접수를 하는데 그 직원이 점심시간이라고 하면서 다음부터는 시간을 맞춰오라고 안내를 했다. 지루하게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진료를 하고 약국에서 처방전을 제출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자리를 잡았다.

대화는 주로 요즘 부모들의 공통된 걱정거리로 이어졌다. 아들이 결혼을 안 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막상 며느리를 보면 모든 근심이 다 사라질 거라고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다. 예비며느리가 첫 인사를 오는 날부터 어떤 여자일까 설레고 기대하던 마음은 사라졌다. 그래도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이유로 승낙을 하고 상견례를 하면서 마음이 상했지만 그대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며느리는 손님 같다는 말을 주위로부터 누누이 들어온 터라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어느 사이 아들까지도 손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들어와 살겠다는 얘기에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아이를 키워달라는 얘기였다. 그간의 서운함은 묻고 아이를 키우기로 했지만 그도 수월치 않았다. 며느리는 친정어머니와 늘 비교를 하면서 육아에 이런저런 참견을 넘어 지시를 하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한심한 노인네 취급을 하고 나섰다. 이래저래 서러운 나머지 몸도 전 같지 않고 육아도 힘에 부치고 나이 탓을 앞세워 아이를 외가에 맡기게 되면서 아들 내외는 거의 발을 끊었다. 아무리 저희만 잘 살면 좋다고 마음을 비워도 사람의 정이 어디 그러냐고 하시는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그분은 눈물을 훔치고 아무래도 내가 요즘 젊은 며느리들이 세월 잘 만나 제 마음대로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부러워서 샘이나 그러는 건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리신다.

약봉지를 받아들고 걸음이 점점 흩어지려는 어머니를 모시고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자니 먼지를 잔뜩 실은 바람이 달려온다. 얼굴을 돌려도 먼지가 눈으로 들어가고 결국 뱁새눈을 뜨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떨며 후회를 하고 말았다. 드디어 등이 오싹거리더니 급기야 목이 간질거리고 기침을 하기에 이르렀다. 꽃샘추위는 언제나 이름처럼 곱게 지나가주질 않는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오니 어머니께서 밝은 얼굴로 말씀하신다. 작은집 조카가 이번에 무슨 시험에 합격해서 취직이 되었다고 좋아하신다. 그 순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내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분명 축하할 일이고 나도 기뻐하면서도 이 마음은 또 무엇인지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고 아직 자리잡지 못한 아들의 얼굴만 떠오른다. 촌수 하나가 백리길이라더니 조카 잘 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내 자식 잘 되는 일만은 못한 심보가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꽃보다 앞서 불어오는 꽃샘바람도 꽃을 사랑하지 않는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꽃이 되지 못하고 꽃샘바람이 된 추위가 더 꽃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한 번 흔들어보는 그리고 누구보다 오래 머물고 싶어 꽃보다 먼저 부는 바람일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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