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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한반도의 위기와 ‘양치기 소년’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으로 한반도는 외세로부터 침략을 가장 많이 받았다. 대략 한반도에선 역사적으로 전쟁이 7년에 한번꼴로 일어났다고 한다. 반도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으로부터의 침략이 잦았다. 왜구들은 신라시대에 20회, 고려시대에는 무려 515차례였다고 고려사에 기록돼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178차례의 침략이 있었고 일제침략을 마지막으로 일본의 침략만 모두 714차례에 이른다. 여기에 몽고와 중국의 크고 작은 침략까지 합치면 900번 이상의 침략을 받았다. 한반도의 땅은 침략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참 기구한 땅이다. 동족상잔의 최대 비극인 6.25전쟁 이후 67년동안 전쟁이 없었으니 어찌보면 태평성대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으로 한반도는 아직도 휴전상태다. 전쟁의 위험성은 예나 지금이나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전후 세대인 나는 학교시절 침략의 역사를 배웠고, 6.25 전쟁의 비극을 귀가 따가우리만큼 들어왔다. 안보지상주의였던 군사정권시절이어서 더 그랬다. 공부보다는 교련복을 입고 흙먼지를 뒤집어써가며 군사훈련을 더 받았고, 툭하면 공설운동장에 모여 북괴만행 규탄 궐기대회에 동원됐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쟁의 결정적인 불안감은 군복을 입었을 때다. 1979년 9월 입대해 신병훈련을 갓 마친 이등병 때였다. 이른바 10.26 사태가 발생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국지전 상황인 ‘태프컨 2’의 비상이 발령돼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군장 꾸리는 방법도 제대로 몰라 어리버리했던 나를 전쟁의 큰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이어 전두환의 하극상 쿠데타인 12.12 군사반란, 이듬해에는 5.18 광주민중항쟁 등의 사건이 이어져 군화끈을 풀지도 못한 채 비상대기를 밥먹듯 했다. 제대 후인 1983년 2월 25일 이웅평의 미그기 귀순사건 때는 “국민 여러분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경계 경보를 발령합니다. 이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서울이 공격 받고 있습니다!”라는 다급한 라디오 목소리에 “또 군복을 입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한반도의 긴박한 상황과 해프닝은 점철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이 발효된 이후 북한은 끊임없는 도발을 지속해 지금까지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례가 45만 건을 넘는다. 가깝게는 2010년의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부터 최근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그것이다. 그런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언론성명만 올들어 세번째 발표했다.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도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경고만 되풀이한다. 양을 치는 소년이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거짓말에 속아 무기를 가져오지만 헛수고로 끝난다. 소년이 두 세번 반복해서 거짓말을 해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어른들은 그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아무도 도우러 가지 않았다. 이솝우화 얘기다.

양치기 소년의 비극은 함부로 경고를 남발하면 정작 다가오는 진짜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딜레마다. 실제로 늑대의 위협이 있기 때문에 양치기 소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은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속아만 주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최근 북한은 ICBM의 사정권을 미국 본토로 확대한다고 한다. 단순한 ‘겁주기’ 수준이 아닐 수 있다. 이에 맞선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도발을 감행하겠느냐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나이어린 김정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장미대선’ 운운하며 한반도 안보의 불안정성을 간과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느냐 마느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국정공백과 안보공백을 없애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다. 예측이 불가능한 한반도 상황에서 국방·외교를 굳건히 하는 대비 태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동안 적당주의와 무사안일에 학습되어져 우리나라가 이솝우화처럼 ‘양치기 소년’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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