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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손으로 가꾼 행궁동 ‘수원의 인사동’ 열매 맺다

 

 

신풍지구 내 철거 앞둔 건물 활용
2009년 공동창작공간 조성 ‘문 활짝’
초기엔 쓰레기 치우며 복구 안간힘

‘수원화성 역사문화마을만들기’ 내걸고
오픈 스튜디오·전시회 등 주기적 개최
입주작가들 9년간 지역주민들과 호흡
운영위 설립… 문화·예술 활성화 박차
2015년 남지터로 이전… 소통 이어가

행궁동레지던시, ‘마을만들기 사업’ 전국 최초 민간주도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안 마을인 수원시 행궁동은 다양한 주민 주체들이 침체된 마을을 활성화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어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행궁동은 1997년 12월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개발 제한 등으로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었고, 이후 주민들은 직접 마을 살리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과의 교류가 이뤄지면서 행궁동에 예술가들이 자리잡고 곳곳이 예술의 옷을 입으면서 ‘수원의 삼청동’, ‘수원의 인사동’이라 불리게 됐다. 그 중심에는 ‘행궁동레지던시’가 자리하고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주민이 제안하고, 주민이 운영하는 레지던시인 ‘행궁동레지던시(행궁동 커뮤니티 아트센터)’를 들여다 봤다. <편집자 주>

행궁동레지던시는 지난 2009년 수원의제21추진협의회와 행궁길발전위원회(행궁가는길사람들(주민조직), 대안공간눈, KYC)가 수원시의 후원을 받아 철거를 앞둔 수원시 행궁동 신풍지구의 건물들을 창작공간과 작품재료, 숙박시설로 지역 예술가들에게 제공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을 열었다.

‘유휴공간을 활용해 저예산 고효율의 공동창작공간 조성·운영’이라는 취지로 문을 연 행궁동레지던시는 2007년 말 남창동에 잠시 조성됐던 ‘빈집 미술관’에서 이어졌다.

주민들이 구성한 행궁길발전위원회는 2007년 정부의 ‘살아나는거리 간판에 날개를 달자’ 사업으로 1년간 간판디자인 사업을 진행했고, 10명의 작가들이 간판 디자인 및 제작에 참여했다.

작가들은 이후 행궁길발전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당시 폐업 후 비어있던 점포 8곳에서 약 열흘 간 ‘빈집 미술관’이라는 전시 및 작업공간을 운영했고, 이를 계기로 예술가들과의 교류 및 행궁동의 마을만들기 참여는 행궁동 레지던시로 이어져 2009년 5월 38명(팀)의 1기 입주작가가 모집돼 그해 6월 27일 문을 열었다.

‘수원화성 역사문화마을만들기’를 내건 행궁동레지던시는 ‘주민과의 소통’을 입주 조건으로 하면서 입주작가들은 취지에 맞춰 행궁동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했다.

당초 6개월 가량 운영되기로 했던 행궁동레지던시는 주민들의 호응과 신풍지구 개발이 늦어지면서 2015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건립 전까지 1~6기 200여명(팀)의 입주작가들이 거쳐갔다.

이후 현재의 남지터 자리로 이전 현재 9기 28팀(명)의 입주작가가 주민과 호흡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긴 하지만 초기 행궁동레지던시는 방치됐던 쓰레기를 치우고 건물 곳곳을 복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열악했다.

민간주도답게 시의 지원보다는 행궁길발전위원회와 입주작가들이 스스로 레지던시로서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려움속에도 ‘행궁동레지던시’만의 의미를 더하는 작업이었고, 노력이 인정받으면서 신풍지구 개발이 본격화 되기 전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됐다.

 


2012년부터는 자문위원회를 확대해 행궁동레지던시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도 꾸렸고, ‘주민과의 소통’이라는 특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행궁동 커뮤니티 아트센터’라는 명칭도 함께 사용했다.

또 레지던시 내 칸막이공사도 진행돼 입주작가들도 비로소 자신만의 작업 공간을 갖게 됐다.

운영위는 작가들 활동의 구심적 역할을 할 간사도 선출했고, 입주작가들의 활동 내용과 결과 보고서 작성 등을 통해 체계를 잡아가는 등 초기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작가들의 어려움과 불만들을 해소하고 레지던시 운영 정착에 집중했다.

물론 행궁동레지던시의 문은 주민들에게 항상 열려 매월 입주작가들의 전시가 이어졌고, 작업실을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와 입주작가전도 주기적으로 개최했다.

입주작가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나혜석생가터 문화예술제’와 ‘2013생태교통 수원’ 등의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문화·예술의 활성화와 함께 행궁동공방거리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행궁동레지던시가 체계를 갖춘 2015년부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본격적인 착공이 계획됐고, 입주작가와 운영위는 6년여간 미뤄 온 ‘철거프로젝트: 간다!!家’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그간의 아쉬움을 달랬다.

남지 복원 전까지 운영이 예정된 지금의 행궁동레지던시에서 ‘행궁동레지던시 철거 프로젝트-신풍동에서의 꿈을 기록하다’전시로 맥을 이어가는 한편 입주작가들은 ‘주민이 함께하는 남지터 예술학교’를 열고 주민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박국원기자 pkw09@

 

“주민 주도 마을만들기 활동 전국에 번지길”

이구림 행궁길발전위원회 위원장


“시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행궁동레지던시가 전국의 마을만들기 사업 활성화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1986년부터 행궁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해 온 이구림(70) 행궁길발전위원회 위원장은 행궁동의 침체와 회복을 직접 겪은 당사자다.

그는 ‘빈집 미술관’이 운영됐던 당시 작가들에게 빈 점포를 물색해 줬고, 행궁동레지던시 설립후 입주작가들을 찾아 격려하면서 주민과의 가교역할을 했다. 또 그의 식당을 레지던시 운영위원회의 회의 장소로 내주며 레지던시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위원장은 “개발제한과 교통 통제 등으로 침체된 당시에는 길은 오래돼 갈라지고, 하늘은 전선에 가려진 동네 였다”고 당시의 행궁동 상황을 전하며 “변화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주민들이 나서게 된 계기였다”고 전했다.

이어 “2007년 ‘살아있는 거리 간판에 날개를 달자’사업을 계기로 작가들과 인연이 됐다. 사업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한데우물 인근 빈 점포에 ‘빈집 미술관’을 열수 있도록 물색해 주면서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교류가 본격화 됐다”고 말했다.

행궁동레지던시 운영 초기에 대해서는 “당시 건물에 있던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큰 차량 3대 이상이 드나들어야 했다. 또 냉난방도 않돼 작가들이 추위에 떨기도 해 안쓰러운 마음이 많았다”고 당시를 전했다.

이제는 자리를 잡은 행궁동레지던시를 바라보는 이구림 위원장은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골목골목에 예술가들이 안사는 곳이 없는 마을이 됐다”며 “행궁동레지던시와 같은 주민 주도의 활동이 전국 곳곳에 불길처럼 번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국원기자 pkw09@



 

9년째 동고동락… “주민 사랑방 되었으면”

최경자 입주작가

“행궁동레지던시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밀착형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는 점입니다. 주민분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행궁동레지던시가 되길 바래요.”

서양화가이자 문화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최경자(58·예명 초이)작가는 2009년 대학원에서 행궁동레지던시 개소 소식을 듣고 참여해 현 9기까지 꾸준히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함께 레지던시에서 오래 지내 온 윤희경 작가와 함께 지금은 새 입주작가들의 조언자이자 때론 ‘엄마’로 까지 불리며 레지던시의 중심을 잡고 있다.

행궁동레지던시와 9년째 동고동락을 하고 있는 최 작가는 “초기에는 건물 전체가 커다란 쓰레기 통이었다. 입주 후 2달 동안은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고 했다. 또 “아침에 오면 노숙인들을 돌려보내고, 화장실의 오물을 치우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3기까지는 레지던시가 작업공간으로서의 틀을 잡아가는 시기였다면 4~5기는 문화적인 틀을 잡아간 시기”라고 소개했다.

9년간 동고동락해온 만큼 애정도 깊다.

최 작가는 “행궁동레지던시는 마을 주민들이 레지던시 운동을 벌인 최초의 사례이자 성공 모델”이라며 “이제는 작업실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자 수원시의 문화 예술 자산”이라고 자신했다.

전시장 문턱을 낮추고, 예술과 시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때로 주민들이 평안을 찾는 공간이 된 행궁동레지던시에 대해 설명하는 그는 내내 미소가 이어졌다.

최 작가는 “언젠가 레지던시를 떠나더라도 행궁동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자부심을 갖고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다시 한번 애정을 드러냈다. /박국원기자 pkw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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