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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을 규정한 강화도조약체결이후 나라가 온통 외세의 각축장이 됐던 시절 인천제물포는 그 중심에 있던 지역 중 한곳이다. 이국적 건축물 이외에 거주 외국인만도 4천여명에 달했다. 지금도 곳곳에 조계지역으로서 일본에 의해 갈가리 찢긴 조선의 민낯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역사의 아픈 현장 이었던 제물포항에서 불과 1Km 떨어진 앞바다에는 1920년대 초만 해도 둘레 4Km, 면적 0.66ha의 아담한 섬 월미도가 있었다. 월미도는 1680년께 조선 후기 임금 숙종의 임시거처인 행궁이 지어질 정도로 바다와 자연이 어우러진 명소였다. 그래서 이름도 많다. 월미도(月尾島), 어을미도(漁乙未島), 어을미도(於乙味島), 어미도(於味島), 얼미도(突尾島), 얼도(突島), 월성(月星), 제물도(濟物島)등등. 그중 ‘얼’자가 붙은 섬의 이름은 ‘사랑하다’, ‘어르다’의 의미인 ‘얼’과 ‘물(水)’을 의미하는 ‘미’와 합 해진 것이며 ‘물이 섞여·휘감아 도는 섬’이란 뜻이라고 한다. 또 이 섬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로즈제독이 “앙증맞고 아름답다”고 했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따 ‘로즈 아일랜드’라 부르기도 했다.

일제는 이 섬에 1922년 돌 축대를 쌓고 연육화 시켜버렸다. 그 뒤 월미도를 풍치지구로 지정하고 중턱에 순환도로를 축조 한 뒤 바닷물을 끌어와 해수풀과 조탕(潮湯)을 만들고 일본 요정인 용궁각, 호텔, 동물원, 하계야영 캠프촌 등을 조성, 임해유원지화 했다.

당시 월미도의 인기는 대단 했다고 한다.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물론 ‘인천은 몰라도 월미도는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이후 15년간 전성기를 누리던 월미도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시설이 초토화 됐다. 이후 미군이 주둔, 50년 넘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다 2001년 개방돼 지금은 ‘월미도 문화의거리’가 조성됐다.

인천시가 최근 월미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300억원을 들여 공유수면을 매립, 해수풀을 설치키로 했다고 한다. 10년째 ‘은하레일’이 방치되고 있는 월미도에 추진되는 또 다른 사업, 일번엔 성공할까./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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