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이준구의 世上萬事]당구(撞球) 열풍이 부는 이유

 

수 년째 당구 열풍이 불고 있다. 퇴근 후 대학가 근처 당구장을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에서부터 중장년, 청년은 물론 남녀 고교생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교 졸업 후인 1977년부터 당구를 배웠으니 당구마니아가 된 지 만 40년이다. 그 때만 해도 주변의 놀이문화가 별로 없었다. 당구장으로 젊은이들이 몰린 이유다. 간혹 불량청소년들이나 깡패들이 자주 집합해 한 때는 불건전한 장소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당구장이 유기장에서 체육시설업으로 바뀌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건전한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후반 흑석동 C대학교 앞에는 당구장이 많기로 이름이 났다. 그리 크지 않은 학교 주변 상가에 당구장이 30여 개는 됐다. 강의마저 빼먹고 당구를 즐기는 날이 허다했고, 가난한 대학생들은 게임비 대신 책과 시계를 맡기던 추억의 시절이다. 그래서 C대 출신들은 당구 학점 300점이 돼야 졸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현재 200점밖에 안 되는 나는 당연히 낙제점(?)이었다. 우리나라에 당구가 전래된 것은 1909년쯤 순종이 건강을 위해 2대의 4구 당구대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창덕궁 내에서 즐겼다고 전해온다. 한일합방 이후인 1920년대부터 일본인들이 당구장 설치를 시작하면서 현재 전국의 당구장은 2만4천여 개에 이른다. 당구장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동호인들과 스포츠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결과다.

대학에도 당구 관련학과들이 차츰 생겼다. 1998년 성덕대학에 당구스포츠학과가 처음으로 신설됐다. 50명의 정원을 채우지 못해 지금은 아쉽게도 없어졌지만 2000년도 이후 용인대, 명지대 등에서 사회체육학과 계열에 당구특기자를 일부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고등학교에 당구부가 창단됐다는 사실이다. 2007년 수원 매탄고등학교에 당구부가 창단돼 당구의 신동(神童)으로 불리던 김행직이 입학하면서부터 당구의 열풍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매탄고 입학 전 15살의 중학생 시절 이미 세계주니어 3쿠션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매번 ‘최초’ 및 ‘최연소’의 기록을 경신했다. 2010∼2012년 3연속 제패했는가 하면 지난달 10일 포르투갈에서 열린 ‘2017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결승전’에서 응우엔(베트남)을 23이닝 만에 40대 34로 꺾고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매탄고 당구부를 창단한 데는 체육교사 출신이었던 홍장표 교장의 결심이 컸다. 아시안게임 10개의 금메달 종목인 당구를 학교체육의 활성화의 선두주자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실현된 것이다. 매탄고 출신의 김행직은 한국 선수 최초로 2011년 꿈의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 1부리그 호스터 에크에 입단함으로써 ‘당구계의 손흥민’으로 불리고 있다. 오태진, 조명우 등 걸출한 당구 스타들이 모두 매탄고 출신들이다. 매탄고에서는 지난달 27일 ‘제3회 경기도당구연맹회장배 학교사랑 당구대회’가 열렸다. ‘스승과 제자의 친목 강화’, ‘모교 사랑’ 등을 취지로 하고 있다. 전날인 26일에는 경기도내 초중고 교원들이 참가하는 ‘제8회 경기도연맹회장배 교직원당구대회’가 열려 학교체육으로서 당구를 보급하고, 학생과 교직원의 건전한 당구스포츠 활동을 장려했다. 당구 사랑에 경기도당구연맹과 경기도가 앞장서 가는 모습이다.

이처럼 당구 열풍이 불고, 아직도 꾸준하게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뭐니뭐니해도 신사정신이다. 당구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능력에 따라 실력 차가 매우 크다. 하지만 고점자와 하점자가 경쟁을 하더라도 때로는 하점자가 이길 수 있는 구조다. 각자 자신이 정하는 실력만큼의 점수를 정해 놓고 그 점수를 획득하면 승자가 되는 신사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하점자가 이겼을 경우 승자로서의 기쁨을 누리고, 고점자는 기꺼이 패배를 인정한다. 운이 좋아 점수를 획득하더라도 고수든 하수든 정중하게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하고 미안해 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즐거워하며 얼싸안고 기뻐하는 다른 스포츠와는 사뭇 다르다. 제로섬 게임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당구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구조여서 우리 삶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