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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국경을 넘어 독일로 간 그녀들의 이야기

 

 

 

가끔 만나 반주를 한 잔씩 하는 지인에게 독일로 건너간 가족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오가며 마주한 박물관에서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이 특별전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무심코 들었던 이야기가 은연중에 뇌리 속에 인연 아닌 인연으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르겠다. 운명처럼 다가온 작은 전시회. 오늘은 국경을 넘어 독일로 간 그녀들의 이야기를 찾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로 독일로 간 한국 간호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전시실이지만 그녀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과 그 속에 담긴 사연들, 독일에서의 생활들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이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비행기에 탑승하는 여성들과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한가득 들어온다. 공항에서 들을 수 있는 비행기 소음도 마치 이 곳이 전시장이 아닌 김포공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들이 집단으로 독일로 가기 시작한 것은 1966년 해외개발공사의 모집에 의해서이다. 그녀들은 바로 ‘파독간호사’이다. 지구촌이라고 불릴만큼 전 세계가 가까워진 지금도 머나먼 이국땅으로 취업을 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60년대에는 오죽했으랴. 그녀들은 왜 정든 고국을 떠나 독일로 향했을까?

전시장에서 만난 그녀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그녀들이 고국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꼭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던 듯 싶다. ‘식구들과 아름다운 산천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시대를 개척해나가는 당찬 그녀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전시장을 조금 더 들어가면 비행기 안을 재현해 놓았고, 비행기가 도착해 내린 곳에는 그녀들의 독일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생활용품들을 전시되어 있다. 독일에서의 특별한 날 입기 위해 가지고 간 고운 한복과 태극기, 예쁜 가방, 그리고 기념품으로 가져간 손수 만든 전통인형, 독일어 공부를 위한 독일어 사전 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떠나기 전 3개월 동안 실시되었던 독일어 수업 출석부와 독일어 시험지, 영문이력서와 영문 건강 검진표, 영문 간호원 면허증을 포함해 콜레라와 소아마비 등 예방접종에 대한 증명서인 국제공인예방접종증명서도 만날 수 있다. 그녀들이 고국을 떠난다는 것은 마음먹는 것 만큼이나 많은 준비가 필요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그녀들의 결혼식 사진이 많다. 그들과 교류하며 사랑에 빠진 그녀들이 멋스럽다. 그녀들의 결혼소식에 한국의 가족들은 결혼식 때 입을 한복과 피로연때 입을 한복, 그리고 신랑이 입을 한복까지 맞춰서 보내준다. 가족이 보내준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하고, 피로연때 입으라고 부쳐준 옷을 입고 피로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전시장에는 그 한복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한 켠에서 놀라운 전시물을 만났다. 바로 한쪽 팔이 잘린 간호복이다.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독일 정부의 필요에 의해 간호사로 건너갔던 그녀들은 1973년 국제 기름파동으로 서독 경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취업이 금지된다. 따라서 노동계약 연장이 거부되고 체류허가가 중단되었다. 즉 강제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그녀들은 서명운동을 벌이며 맞섰고 한쪽 팔이 잘린 간호복은 강제송환에 맞선 그녀들의 항의였다. 결국 독일정부는 그녀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됨으로써 그녀들의 독일 생활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전시회 곳곳에서는 독일인과 한국인 그 경계를 넘나들며 고군분투한 그녀들의 흔적들이, 그러면서도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훌륭한 인생을 써 내려간 그녀들의 멋짐이 곳곳에 묻어있다. 더위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더위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요즈음 시원한 박물관에서 국경을 넘어 독일로 간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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