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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손자 이야기

 

연일 청명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더니 소낙성 폭우가 내린다. 옆 동네는 우박이 떨어진다고 지인이 동영상을 찍어서 카톡에 올렸는데 장난이 아니다. 가평군 북면은 우리나라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가평 사과 주산지이다. 과수농가에 피해가 없으면 좋으련만 걱정이 앞선다.

어제는 백일이 갓 지난 손자 녀석이 왔다.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자주 가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귀여워도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놈을 보러 간다는 것이 아들 내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니 사실 보고 싶어도 참아가며 카톡에 올려주는 사진을 보면서 어르고 웃고 한다.

모처럼만에 만난 손자 놈을 안아보고 얼러보고 하니 좋다고 웃는다. 자기 할아버지인 줄 아는지 다행히 낯을 많이 가리지 않는 편이라 다행이고 좋다고 웃어주니 더욱 사랑스럽다. 손자를 보니 이제 나이를 먹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자식을 낳아서 키우면서 가져보지 못했던 묘한 감정도 행복도 느낄 수 있으니 세상에 부러운 게 없다는 생각이다.

사랑의 포로가 되어 결혼을 하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부지런히 살다 보니 아이가 태어났어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고 그저 남들에게 뒤지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물질적인 뒷받침과 교육을 잘 시키면 된다는 생각에 그 외 것들은 신경을 못 쓴 부분들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가 손자 놈이 태어나니 아들이 태어났을 때 하고는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아들놈들에게 못 한 것들을 손자를 통해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손자 놈이 태어나기도 전에서부터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손자가 태어나니 달라지는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공감을 하는 분들도 있고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는데 나의 경우에는 행동이, 생각이 좀 더 조심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혹시 남에게 나쁜 짓은 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나쁜 기운이 아이에게 가는 것은 아닌지 과거에 살아오면서 나쁜 업보는 쌓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하면서 옛날의 부모님들이 하시던 말씀도 하나하나 생각으로 되살아난다.

몹시 가난했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동냥을 오는 걸인이나 시주를 받으러 오는 스님에게도 인색하지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당신의 궁핍은 뒤로 하고 그냥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은 우리가 먹어야 할 밥마저도 나눔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리하고는 당신은 굶거나 숭늉 한 그릇으로 때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식 사랑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내리사랑이란 말도 이런 것인가 보다. 손자가 태어나고 나서 오히려 행동거지에 조심을 하려는 것은 어쩌면 이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잘 키우고 잘 가리키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식 양육에서 뭔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선한 기운만을 접할 수 있는 그런 기운을 만들어 주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되짚어보는 현상 이런 것들이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가풍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 보면 뭔 일인들 없겠냐만 우리 손자 놈의 앞길에는 간혹 비는 올지언정 우박과 같은 속수무책인 어려움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이 글을 쓰면서도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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