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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도란 오묘한 이치나 도를 깨닫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불가에서 승려들이 저마다 득도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속세를 떠나 출가했다는 의미도 있다. 득도를 한다는 것은 대개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는 거창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각자 자신의 인생여정 중에 축적된 경험들을 최대 공약 단어로 축약하여 ‘인생이란 ** 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도 득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축약한 문장내용에 누구라도 각자의 삶을 대입해서 이 내용에 적합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 축약한 내용을 수긍하게 되면 살아가면서 지나치게 기뻐할 것도 근심할 것도 없다. 어릴 적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이르는 삶의 여정에서 필자가 깨달아 축약한 문장은 ‘인생이란 고장 나는 것이다’이다. 유치하겠지만 나름 심오하게 깨달아 찾아낸 말이다. 이 말은 ‘생 노 병 사’와 유사할 수 있지만 개인을 포함한 가족의 병, 이탈, 결별, 사고 등등, 사용하다 보면 자동차가 고장나듯이 인생살이에도 영과 육, 가족,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어떤 부분은 무상수리가 가능한 경우가 있고 어떤 것은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만 고칠 수 있고 어떤 것은 아무리 돈을 들여도 수리가 불가능한 것이 있다. 삶도 이렇게 하나씩 수리해 가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고쳤을 때의 행복과 고장이 났을 때의 불행이 교차되는 것이 인생이다. 고장났을 때의 당혹감과 억울함, 비용, 완전 고장 등 일상에서 순간순간 닥쳐오는 괴로움이 있지만 인생이란 고장 나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마음을 조금 누그릴 수 있다.

뱃심 좋은 누군가는 ‘죽기 밖에 더 하랴’라는 말도 한다. 과시 언어가 아니라면 이 사람은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예방 의학처럼 병이 날 것을 미리미리 예비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만큼 불행은 작아지고 적어질 것이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고장이 느닷없이 찾아오게 되더라도 담담하게 수리하고, 노력해도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그 때가서 하늘의 뜻으로 알고 수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 안에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한탄할 것도 없다. 한탄과 비관, 자학이 고장이 난 것을 더 나아지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칼뱅은 자신이 깨달아 축약한 것을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예정한 것’이라고 했다. 채근담에는 ‘자신을 설정하게 되면 내 앞에 보이는 것은 번민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신과 다르고 차이가 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고장나는 것이다.

일반 시민 각자가 득도를 한다면 이들이 인생을 축약할 문장은 매우 다양할 것 같다. ‘모든 것이 하나님, 혹은 부처님의 뜻’이라고 아주 쉽게 말하는 사람은 신심이 깊을지는 모르나 이 말은 득도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도피이며 지존한 것에 의존해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 점에서 칼뱅도 유사하다. 매사에 몸이든 영혼이든 인간관계든 ‘고장 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혹 고장이 나더라도 바로 수리할 수 있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염원하며 수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의 모든 면에서 가급적 고장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먼저 고장 나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불가에는 ‘지나치게 건강하려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건강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유사하다. 가족관계부터 직장과 사회에서 고장이 나지 않게 하려면 먼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친하다는 명분으로 함부로 대하면 그 관계는 머지않아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금연금주를 해야 건강해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으면 자신의 몸은 물론 이로 인해 가족과 이웃까지 고장이 날 수 있는 것과 같다. 도교에서 말하듯 ‘무위’가 고장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대사회에서 무위자연을 실천하기란 출가하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포함한 일상의 모든 관계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중용을 지켜나가는 훈련을 하면 고장이 일어나도 매우 작거나 더디게 일어날 것이다. 10월이 가기 전, 깊은 가을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모두 나름의 득도를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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