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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깨가 쏟아지는 집

 

엊그제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오늘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입니다 한다. 순간 드는 생각은 좋은 시절 다 갔구나 였다. 마음도 별안간 얼어붙는 듯 몸을 한번 으스스 떤다. 오늘도 원고 청탁을 받은 게 있어서 이른 출근을 했다. 새벽 공기가 차다. 사무실 공기도 싸늘하다. 온기라도 돌게 난로를 켜 놓으니 출입문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상강이 지나더니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가 보다. 이제 가을도 다 갔구나 하며 벽에 걸린 달력을 들여다본다. 다음 절기가 입동이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올해는 농사를 많이 안 했다. 비가 좀 왔다 싶으면 물에 잠기는 논은 매립을 하기 위해서 아예 농사를 포기하고 매립 중이다. 밭농사는 아내가 어머니와 하는데 일손이 크게 필요할 때만 서너 번 거들었지 아예 내 일이 아니오 하고 지냈다. 전업농이 아니고 자급자족형 농사이니 이것저것 조금씩 심어 가짓수는 여럿 된다. 누구 말처럼 재미로 짓는 농사다.

올해는 멧돼지 피해가 적다는 들깨를 많이 심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요즘 들깨 수확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 군데 심은 것도 아니고 여러 군데에 심어 놓았으니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그렇게 하고 다닌다. 들깨는 벤다고 안 하고 꺾는다고 한다. 낫으로 베는 것이 분명한데 꺾는다고 하면 처음에는 참 이상도 하다 한다. 그러나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베어 보면 그 말을 이해한다. 어쩌면 뜨거운 국물을 마시거나 뜨거운 열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하는 말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듯이 비슷한 맥락이리라.

깨의 특성은 수확할 때 다른 곡식과는 다르게 우수수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조금 기울여 낫으로 베면 깨알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그래서 깨를 수확하는 것은 이슬이 다 마르기 전에 아침나절에 수확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리고 꺾는다는 표현도 실제로 들깨를 수확을 해보면 알겠지만 한 손은 거의 수직으로 서있는 깨를 잡아 세우고 한 손에 낫으로는 베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당기고 깨는 밖으로 밀며 꺾듯이 베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무척 어렵지만 해보면 이해가 되는 방법이다. 한편 깨를 꺾듯이 베는 이유가 또 있겠다 싶어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서도 조상님들의 배려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확을 하고 남은 뿌리 둥치에 관한 이야기다. 깨는 다른 농작물과 달리 목질 화된 줄기가 매우 강하다 깨를 수확하고 나면 땅위로 10㎝ 정도의 남은 둥치들이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하듯 베어 널어 놓으면 수확하는 과정에서도 찔려서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밭에 남은 그루터기는 수많은 송곳이 밭에 갈려있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깨는 베지 않고 꺾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김장 이외 모든 농작물은 수확이 바쁘다. 김장이야 아직도 한 달 여정도의 시간이 있지만 다른 농작물은 서둘러 수확을 해야 한다.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영그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품질의 저하는 물론 허실되는 것들이 많아 수확량의 감소를 불러온다. 올해도 가족을 위한 먹거리를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일을 한 아내와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많이 거들지 못한 미안함이 있지만 한마디 크게 외쳐보고 싶어집니다. 여러분 우리 집은 날마다 깨가 쏟아지는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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