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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교권의 중요성

 

1980년 때까지만 해도 교권은 살아있었다. 나이가 많은 학부모님들을 만나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면서 ‘제 자식 때려서라도 잘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때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학부모들은 자식의 교육을 교사에게 맡겼다.

아이들은 집에서 식구들의 말은 듣지 않더라도 교사의 말은 들었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 효를 비롯한 도덕교육이 살아있었다.

지금은 서글프게도 효 교육이나 도덕교육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구시대의 폐물로 여겨질 정도의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랍비는 이스라엘에서 신의 위치에

2000여 년이나 정주할 땅이 없어 세계를 유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의 땅에 정주했다. 주변은 아랍민족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강하다. 이스라엘이 강한 것은 교육의 힘이다. 그 교육의 힘은 ‘랍비’로부터 나온다.

‘랍비’는 원래 유대교의 율법학자를 말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스승, 나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는 데 우리의 교사와 비슷한 위치의 ‘랍비’는 이스라엘에서 신의 위치에 있다.

그들의 어린이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교사를 ‘랍비’로 생각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말을 하면 따른다.

교권은 흔들리다 못해 계속 추락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부모나 선생님이 말을 하면 ‘왜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데요?’라고 항의를 하는 것은 보통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권은 흔들리다 못해 계속 추락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음식을 함부로 먹어도 말을 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옆의 짝쿵과 노닥거려도 지도하기가 어렵다.

뒤에 서서 반성하게 하거나 무릎을 꿇리는 일도 어렵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항의를 하면 교사만 당한다.

아이들이 항의를 하거나 대들어도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어졌다. 교사들의 교권보다 학생들의 인권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벽을 보고 서있게 하거나 서서 반성을 시키기도 어려워졌다. 학부모가 항의를 하면 학생 인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잘못하다간 교직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S시에서 교사가 줄을 세우는 과정에서 학생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줄 좀 똑바로 서라. 네가 00’이라고 주의를 주었다가 폭행혐의로 50만 원의 벌금형을 받고 교직을 떠난 뉴스도 있었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사를 얽매고 학생의 인권만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게 되었다.

균형적인 인권관계를 고민 해보아야

학생들이 교사에게 큰소리를 치는 배경에는 그들 뒤에 교사보다 힘이 센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학생들이 잘못하여 교사가 야단을 쳐도 부모들이 자식의 교육적 차원에서 교사 편에 섰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잘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사보다 훨씬 힘이 강한 자신들의 부모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선생님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는 심리적인 것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꼼짝도 못해’라는 생각이 아이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한 우리의 교육은 어려워지고 교권은 점점 약해져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람직한 학교교육을 위하여 이제 우리 모두 교권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균형적인 인권관계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 해보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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