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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이 세상에 둘도 없는 신랑감

 

어느 집에 아주 예쁘고 똑똑한 딸이 있었습니다. 요즘 누구나 다 아는 말로 ‘엄친딸’입니다.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아 공부도 잘 해서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 신앙생활에도 소홀함이 없어 주일에는 성당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는 딸이 졸업도 하기 전에 외국계 회사에 떡하니 취업을 해서 부모님 어깨를 한껏 올려줍니다. 딸 생각만 하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습니다. 어쩌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딸의 얼굴을 떠올리면 모든 근심이 봄눈 녹듯 사라집니다.

친구들이 중매 서겠다는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다툴 지경입니다. 미용실에서는 딸을 미스코리아 내 보내라고 호들갑이고 동네 목욕탕엘 가도 어떻게 하면 딸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겠느냐 할 정도입니다.

좋은 신랑감이 있다는 말에 슬쩍 비쳐보니 그렇게 착하고 살갑던 딸이 쌩 하는 얼굴로 결혼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좋은 직장 다니며 친구들이랑 어울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아직 나이도 있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겠지 했습니다.

딸 시집보내라는 말도 적당히 따돌리며 시간을 끌었지만 정말 욕심나는 혼처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몇 해를 자유롭게 살면서 나이도 들어 마냥 결혼을 미룰 일도 아니고 좋은 신랑감 놓치게 될까봐 조바심도 나고 자꾸 타박을 하면 앞으로 중매도 안 들어 올까봐 딸에게 말을 비쳤더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그동안 남자를 희귀동물 취급하면서 얼씬도 못하게 하는 줄 알았던 딸에게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있겠습니까? 엄마는 더 이상 궁금증을 누를 수가 없어 싱글벙글 하며 무슨 말을 먼저 할지 몰라 이것저것 두서없이 물어봅니다.

딸의 대답은 명쾌합니다.

신랑감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집안의 외아들인데 얼굴도 잘생기고 엄청나게 부자라 없는 게 없고 못 하는 일도 없으며 마음도 좋아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는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좋은 사람이라며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일등 신랑감이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흉이 있다고 하네요.

“다른 게 아니라 나이가 좀 많아서 혹시 엄마가 싫어할까봐….”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특한 딸을 끌어안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 딸이 누군데….”

서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되어 딸과 함께 남자친구가 사는 곳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가는 길엔 신록이 아름답고 봄꽃이 향기로웠다. 꽃도 나비도 딸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있는 것 같았다.

도심에서 벗어나 한참을 간 곳엔 멀리 보기에도 커다란 대 저택의 철 대문이 그 집의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정문을 통과해서 도착한 엄마는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000 자매님의 입회를 환영합니다.”

딸이 그 좋은 혼처를 마다하고 따라다니는 남자들에게 눈길도 안 줄 만큼 온 마음을 바쳐 일생을 사랑하기로 약속한 신랑감이 누구였는지를 대저택에 딸을 두고 나올 때야 알았다.

수도원 높은 담장 너머로 하얀 라일락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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