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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소확행이라는 말

 

코끝이 알싸하도록 노란 향기가 맴돈다. 프리지아를 안고 돌아오는 길, 마음 먼저 봄을 부르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얼굴 가득 미소가 넘친다. 겨울 건넌 심심한 사무실 구석구석 심어질 봄 생각에 입 먼저 방긋거리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그렇게 나의 봄은 2월 막바지 그 언저리에서 시작되었다. 학교 졸업식이 거의 마무리가 될라치면 봄을 기웃거리던 천정부지 꽃값도 싸지게 마련이다. 때맞춰 기다렸다 노란 프리지아 한 아름 안고 맞는 그 봄이야말로 나의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임에 분명하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말하는 신조어. 어쩌면 그 소확행을 잘 다스리는 일이야말로 초를 다투듯 달라지는, 끝없는 사건사고로 점철되는 현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나만의 큰 행복을 위해 이웃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뺏고, 밟는 행위가 아닌 소박하고도 잔잔한 물결 같은, 그 자잘한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그런 세상이야말로 봄꽃 지천으로 피어있는 4월의 동산 같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하루 종일 휘둘리다 퇴근한 직장인들이 마주한 소주 한 잔, 육아로 들볶이는 주부들의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틈새의 수다, 새내기 직장인들의 퇴근길에 속이 뻥 뚫리게 불어주는 한 줄기 바람, 뜬금없는 오랜 친구의 안부문자 등등처럼.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일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행복이 되는 일은 참으로 많다. 단순하고 짧은 그림책을 보다 문득 새로운 감동을 받았을 때도 나는 뭉클한 행복을 느낀다. 오늘처럼 봄이라 느껴지는 날 아지랑이 몸짓따라 강둑에 올라보는 일도 나에게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일 때가 있다. 그렇게 행복은 멀리, 대단한 곳에서 찾을 일은 아닌 듯하다. 그저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그 시간 속에 맴돌고 있음에 분명하다. 마치 ‘파랑새’ 동화 속에서 찾아 헤매던 그 파랑새처럼 말이다.

모처럼 일찍 일어난 아침. 뿌옇게 떠오르는 여명의 잔상을 끼고 베란다 화분에 물을 준다. 내 손길을 기다리는 화분 속 화초들의 낯빛. 저 말없음의 소통을 생각해 본다. 내가 주었던 물에 힘 얻어 빳빳하게 두터워진 저 잎새를 보노라면, 말없음은 말없음이 아니라 또 다른 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화초들의 그 또 다른 말들로 마음 넉넉해지는 이 아침, 더하여 덖음차 한 잔 우리고 싶다.

찻물 와그르르 끓어오르고 다관가득 찰랑거리는 녹차를 찻잔에 따루어 마시기 시작하는 그 첫 잔의 향. 단전을 따라 전신으로 퍼지는 그 뜨끈한 전율을 나는 내 오늘의 또 다른 소확행이라 말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한 탕의 대단한 행복을 좇느라 감내해야할 숱한 작고도 소소한 내 행복을 손해 보기 싫은 이기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내 소소한 소확행을 위해 오늘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미 소소한 행복이 쌓여 큰 행복이 된다는 이치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작지만 미소 지을 수 있는 오늘이 나의 보약일 뿐. 다닥다닥 붙어 웃는 3월의 개나리꽃잎처럼 환하게 웃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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