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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또 다른 반란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4자매와 남편들이 동행했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2박3일의 여행이었다. 2박3일이라지만 첫 비행기로 출발해서 마지막 항공기로 돌아오는 일정이라 그리 아쉽지는 않은 일정이다. 공항에서 터진 웃음은 여행 내내 계속됐다. 우스갯소리 잘하는 둘째가 기쁨조 역할을 했다. 별 내용 없는 말도 둘째의 입을 거치면 웃음이 되고 즐거움이 됐다.

성격과 취향은 달라도 함께 하는 것이 설레고 즐겁다. 머리가 허연 맏이는 유채꽃 밭에서 요조숙녀 같은 표정을 연출하고 둘째는 각설이 패 같은 포즈와 행동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나이를 잊고 꽃과 한통속이 되어 즐기는 모습이 노란 나비들 같다.

꽃처럼 터지는 웃음은 여행의 청량제이고 비타민이다. 녹록치 않은 살림 일구고 자식들 키우며 힘겨운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형제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그저 내 형제자매이다. 유년으로 돌아가 동생들 업어 키운 이야기며 남자친구 사귀다 아버지께 들켜 쫓겨난 일을 흑백 필름 돌리듯 풀어냈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면서 언니는 가슴에 묻은 동생을 떠올렸다. 여동생 넷에 다섯째로 얻은 남동생이 설사병으로 병원을 드나들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업고 병원에서 집까지 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동생들을 뒤란으로 보내고 흰 소청으로 죽은 아이를 싸고 또 싸고는 동네 아재를 불러 공동묘지에 묻었고 아버지는 매일 무덤을 찾아가 통곡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는 그렇게 8남매를 키우며 세월의 파도와 맞서 싸우셨고 이젠 늙은 몸이 되어 병마에 시달리니 어머니께 마음을 다하라는 당부도 했다. 사는 일은 파도 같다. 때론 온화하고 때론 성이 잔뜩 나 몰아치기도 한다. 풍랑으로 배를 뒤집기도 하고 어부를 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 파도 위에서 노를 젓고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풍랑을 잠재우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가며 가끔은 타협하고 가끔은 좌절하면서 삶이라는 노를 쥐고 가는 것이다.

두 번째 날 가파도에 갔다. 가파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이다. 청보리 축제가 한창이었다. 푸른 물결처럼 일렁이는 청보리는 이삭이 패서 한결 아름다웠다. 섬을 도보로 한 바퀴 돌았다. 멀리 보이는 마라도가 정겨웠다. 둥근 섬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다. 듬성듬성 떠 있는 구름과 잔잔한 바다 그리고 간간히 흔들리는 들꽃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이 인상적이다.

점심식사 하러 들른 집이 방송에 출연했던 중년부부의 음식점이었다. 초면이지만 낯설지 않는 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부부의 진솔함과 부지런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가 여행자다. 삶 자체가 여행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삶을 찾아가는 것이다. 때론 천재지변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아름다움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 걸음에서 삶의 의미와 진실을 배우는 것이다. 이번 자매들과의 여행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서로 잊고 무심히 산 날들에 대한 회상이고 보상이다. 어머니와 동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형제간의 우애를 다짐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웃고 떠들고 맛난 음식 먹으며 지낸 3일의 여정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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