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안미옥
내게는 얼마간의 압정이 필요하다. 벽지는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를 믿어서는 안된다. 문을 닫는 손으로. 열리는 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옆집은 멀어질 수 없어서 옆집이 되었다. 벽을 밀고 들어가는 소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게
다리가 네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팔꿈치를 들고 밥을 먹는 얼굴들. 툭. 툭. 바둑을 놓듯
-안미옥 시집 ‘온’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고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나를 꾹 눌러 너에게 매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압정이란 무엇인가. 물론 벽이나 가구 등에 무엇을 붙이고 떼어낼 때 쓰는 물건이다. 하지만 주변의 그 작고 하찮은 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크다. 벽지는 벽에서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 또한 열리고 닫히는 문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너와 나,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내뿜게 되는 불안이 있다. 그리하여 다리가 네 개인데도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다.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건조한 우리 사이, 이러한 버석거림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툭. 툭. 바둑알을 놓듯 하는 관계의 가벼움이 안타깝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