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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벼꽃마을 남매계

 

 

 

천천히 뒤로 쳐지며 사라지는 산모롱이. 몇 개 구름이 아슴아슴 떠다니는 빠끔하게 드러나는 하늘. 자동차를 타고 오르는 구불구불한 이 길이 어쩌면 이다지도 정겨운지. 연거푸 숨고르기 하는 음악. 훤하게 뚫려있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인, 앞을 짐작할 수 없는 오르막길. 간혹 그날그날 해결해야 할 일이 턱에 차올라 지칠 때마다 이 길을 생각한 적이 있다. 오르고 오르는 그 숱한 날 중에 오늘은 특별히 팔공산 구불구불한 이 길을 따라 숨 고르러 간다. 어머니, 아버지 푸근한 사랑 그득히 채우러 ‘벼꽃마을 남매계’에 간다.

왁자하게 사람소리 끓어오르는 넓은 홀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참, 희한하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상이 보이고 공간 가득 음악이 흐르고 이십대의 조카, 질녀부터 오십대의 아재, 숙모, 이모, 삼촌, 어르신까지. 한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혼연일체로 꾸미는 소박한 축제. 과거 소시민들의 잔치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다. 이 그림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은 어르신들의 무대다. 흥이 차오르자 춘향가 중에서 감옥에 갇힌 춘향이 이도령에게 쓴 편지를 노래로 해 보겠다는 팔순의 어머니와 아직도 청아한 목소리 그대로 유지하고 계신 칠순의 숙모가 불러주시는 노래는 가히 한 편의 시를 연상하게 한다. 밤이 늦도록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 주고받다 지치면 한 곡조씩 노래 주고받고, 더하여 춤사위까지. 그 또한 지쳤다 싶으면 스치는 바람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잠들기까지. 수십 년 째 이어지고 있는 아버지의 고향이름을 딴 ‘벼꽃마을(화봉) 남매계중’의 모습이다.

단발머리 중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따라다니곤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당연히 참석해야할 의무로 인식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육남매는 그렇게 어린 자식들까지 데리고 모두 함께 가까운 곳에 소풍을 가거나 또는 집에서 형제가 돌아가면서 조촐하게 남매계라는 명목으로 파티를 열어왔던 것이다. 지금은 육남매의 부부가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우리 어머니, 작은 어머니 한 분, 막내 고모 한 분만 남으셨다. 어릴 때부터 모든 과정을 함께 보아왔던 우리 사촌들은 매번 사십 명 가까이 모여지는 그 큰 모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어쩌면 부모님들의 바람이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더 삭막해져 갈 세상 속에서 같은 추억을 가진 피붙이들이 정 나누며 힘 얻고 용기 내어 살라는 유언 같은.

논밭 일구며 살았던 옛날엔 그랬었다. 키 낮은 담장으로 안부 주고받으며 친인척이 이웃이 되고 큰 일 작은 일 의논하며 서로 돕던 일상. 하지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직장 따라 유목민처럼 떠도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웃이라지만 각자의 생활패턴이나 잦은 이사로 정 나누기는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멀리 떨어져 살다가도 종종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어제 본 듯 환하게 웃으며 서로 마주 안을 수 있는 우리 사촌간의 인정스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아이들을 인식하게 된다. 초를 다투며 변화를 추구하는 현실에 적응하느라 감성이 메말라가는 그 아이들 말이다. 부모님 떠나고도 끝끝내 그 정 푸근히 느끼게 해주는 ‘벼꽃마을 남매계중’ 같은. 그 형태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질 수야 있겠지만 꾸밈없는 그 사랑만큼은 풋풋하게 이어주는. 그런 숨은 듯 따끈따끈한 보석 하나쯤 내 아이들에게도 꼭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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