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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미추홀 구(區)

미추홀(彌鄒忽)은 ‘물의 고을’이라는 뜻이다. 인천 최초의 지명을 의미 한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실린 백제 건국 설화에 미추홀이란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매우 역사가 깊다. 설화 내용은 대략 이렇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태어난 비류와 온조 형제는 이복형제 유리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자 추종세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했다. 미추홀은 물이 짜고 땅이 습해 살 만한 곳이 못돼 비류는 후회 끝에 죽고, 백성들은 위례성에 자리 잡은 온조에 합류했는데 그후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했다는 것이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읍지터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미추홀의 중심 유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문학산이다. 물론 정상에 있는 문학산성을 백제의 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여럿 있다. 일반적으로 백제의 성은 평지에 흙으로 조영하는 평지성이나, 문학산성은 산 정상에 봉우리를 둘러싸는 형태인 포곡식으로 쌓은 석성(石城)이어서다. 또 인천 지역에 비류가 정착하였다는 고고학적 근거도 빈약하다. 하지만 역사적 증거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많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문학산 위에 비류성의 터가 있고 성문의 문짝 판자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성안에 비류정(沸流井)이란 우물이 있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 주변 지역에서 지금도 백제계 타날문 토기 조각들이 나오는 것도 또 다른 증거다. 때문에 인천 지명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미추홀이다.

인천 남구의 명칭이 오는 7월1일 ‘미추홀구’로 바뀐다. 2015년 12월 명칭 변경을 선언 하고 본격 추진한지 3년, 개청 50년 만이다. 남구의 구청명 변경은 동서남북 방위식 구(區) 이름을 쓰는 전국 25개 광역시 자치단체 중 최초여서 의미가 더욱 크다. 구청이름의 탄생으로 인천 시민들의 정체성이 다시 깨어나고 자긍심을 높여주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관문으로서 인천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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