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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기무사 개혁과 계엄령 문건

 

기무사는 나에게도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당시에는 보안사였다. 연대급 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부대 안에서 그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루는 문서수발 차 본부대로 가다가 이해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는 인사주임이 연대 보안반 선임하사(중사)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계급장도 없는 그 선임하사를 나도 단박에 보안대에 근무하는 것을 알았다. 이를 보고 상병 계급장인 나로서는 한편으로 그러려니 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몇 달 후에 병장으로 진급했다. 행정반으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중대장 있어? 지금 안 계십니다. 어디 갔어? 본부대에 가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 임마! 중대장이 어디 갔는지도 몰라?” 아무리 군대지만 누군지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기분이 나빠 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마침 그때 인사계가 들어오셔 바꿔드리고 한참을 통화한 뒤 나를 바꾸라더란다. 보안부대 사무실로 뛰어내려오라고 했다. 사복차림에 머리를 기른 그는 난데없이 나의 따귀를 서너 대 때렸다.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중대장을 찾던 그가 감히 보안대를 못 알아보냐는 그런 태도였다. 사병의 신분이어서 하사관에게 꼼짝 없이 당하고야 말았다. 그 후에도 해프닝은 또 있었다. 군대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던 일이다.

그 이후 인사계와 중대 간부들로부터 보안대의 ‘끝발’에 대해 설명을 듣고는 소령이 중사에게 거수경례를 붙인 상황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권인수작업을 착착 진행 중인 때라 더 수긍이 갔다. 기무사는 지휘관들의 전화를 합법적으로 감청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특히 중대장급 이상 파란 견장을 찬 지휘관은 대위에서부터 대장까지도 보고 대상이다. 이들이 올린 보고서는 진급 심사 때 결정적인 자료로도 제공된다. 역대 정부에서도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접보고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도 군사정권의 폐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면보고나 독대(獨對) 형태로 기무사령관의 보고를 받았다. 마치 국정원장의 직보처럼 말이다. 하나회를 척결하고 군의 문민화를 꾀한 김영삼 대통령마저도 기무사령관의 보고를 받았다. 군사정권이든 문민정권이든 정권 유지와 운영을 위해 더 많은 고급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권력의 공통된 속성이기 때문이었다.

군대는 보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렇듯 기무사 소속 군인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지휘관을 감시(?)하는 특유의 임무 때문에 우쭐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별 두 개 소장이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불과 몇 달 사이 자기 맘대로 세 개, 네 개를 달고 전역했다. 야전군사령부도 장성의 숫자가 7~8명인데도 기무사령부에는 9명이다. 이쯤되면 군에서조차 통제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사단장이 소장인데도 중령인 사단 기무부대장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에 기무사의 파워도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기무사는 군내 동향을 밀착 감시하는 정보력 때문에 ‘파워’가 아직 살아 있다.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문건이 연일 문제가 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이 문건이 국방부 기무사 육본 특전사 및 수도권 부대에 오고간 정황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난 정권에 있었던 과오를 이번 정권에서 모두 공개해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촛불 및 태극기 시위 등 불안한 국내 정세를 진단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계엄이 발동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그렸는지도 모른다. 일상업무인지, 과도한 충성인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서는 곤란하란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를 봐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문건일 뿐 실현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기 1주일 전인 지난해 3월 3일 국방부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문건’을 보고받은 한민구 전 국방장관도 “문건 유출 시 사회적 파장이 크고, 군이 오해받을 소지가 있으니 이날부로 모든 논의를 종결하라”고 지시했다는 당시 국방부 고위공무원의 증언을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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