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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황제릉 홍유릉을 찾아서 1

 

 

 

 

 

요 며칠 새 경복궁 갈 일이 많아졌다. 경복궁 끝자락에 위치한 건청궁을 드나들면서 문득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 궁금해진다. 오늘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그리고 그 가족이 함께 잠들어 있는 홍유릉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금곡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홍유릉은 고종과 순종, 두 황제의 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왕릉이 아닌 황제릉에 해당한다. 따라서 다른 왕릉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조가 다르다.

고종황제는 합일합방 후 1919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종황제의 능을 현재 위치로 결정하게 되자, 터가 좋지 않다고 천장설이 끊이지 않았던 명성황후의 홍릉도 이곳으로 옮겨와 합장릉을 만들었다.

원래 홍릉은 명성황후의 능호이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조선을 이왕가로 격하시켜 버린 일본은 고종의 능호를 따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종이 능호를 쓴다는 것은 대한제국 황제의 신분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성황후와 합장하고 홍릉이라는 능호를 쓰게 되었다.

많은 사건을 겪어내고 끝내 나라가 망하는 것까지 봐야 했던 고종, 고종황제가 능호를 갖는 방법은 이미 정해진 황후의 능호를 함께 쓰는 방법 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홍릉의 금천교를 지나서 홍살문을 지날 때까지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 홍살문 안을 들어서는 순간 일반 왕릉과는 사뭇 다른 황제릉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참도 좌우에 서 있는 석수들이다. 왕릉의 능침에 있던 석물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와 참도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개성 있는 캐릭터 인형들을 하나씩 모아서 전시해 놓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개성만점 석물들의 생김새는 기존 왕릉에서 보아오던 석양이나, 석호, 문무석인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홍릉의 수호자이자 개성만점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석물들을 먼저 만나보자.

문무석인을 먼저 보자. 이렇게 키가 커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릉의 문석인 옆에 서면 우리들의 키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고종황제를 모시고 있는 이 문석인은 약 4m의 키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키가 크면 싱겁다는 말처럼 조금은 싱거운 느낌이 묻어난다. 무석인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칼을 손에 쥐고 있지만 장군으로서 기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은 기린을 보자. 홍릉의 기린을 보고 무슨 기린이 이렇게 생겼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기린은 동물원에서 만날 수 있는 기린이 아니라 용이나 봉황 같은 상상속의 동물이다. 흥선대원군의 흉배에 사용되던 동물이 바로 이 기린이다. 하지만 홍릉의 기린은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다음은 홍릉의 석물 중 유난히 이국적으로 생긴 석물을 만나보자. 바로 코끼리다. 코끼리가 조선시대에도 있었을까? 그렇다. 코끼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코끼리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태종실록과 세종실록이다. 일본 왕이 태종에게 바친 코끼리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태종 임금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가 너무 많이 먹는데다 구경 간 고위관료를 밟아 죽여서 문제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랬던 코끼리가 시간을 훌쩍 넘어 이렇게 황제릉을 지키고 있다.

코끼리만큼이나 이국적인 것이 바로 낙타다. ‘생기다 만 낙타’의 모습에 이 낙타가 과연 황제릉을 잘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낙타만큼이나 의심스러운 석물이 바로 사자다. 사자도 상상 속의 동물인데, 아무리 상상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동물의 제왕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사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상상의 동물처럼 신비함도, 제왕의 포스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두 번이나 천장하고 결국 남편과 합장릉으로 꾸몄지만 명성황후의 능에는 시신이 없다. 생전에 입던 옷을 묻었을 뿐이다. 이런저런 기구한 사연을 담은 홍릉은 화려하게 꾸며졌기에 보는 이를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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