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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르누아르의 끝나지 않는 실험

 

 

 

오늘은 소설가 김진명의 이야기를 꺼내며 시작해보고자 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시절,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어보자 마음을 먹고 잔인한 독서를 시작했다고 한다. 칸트가 누구고, 니체가 누구든 간에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그들의 저작을 못 읽어낼 이유가 뭐가 있느냐며 말이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그 방대한 양의 뛰어난 지혜를 대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필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대체 세상에 아직 쏟아지지 않은 말들이 뭐가 남아있기에 이처럼 글쓰기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일까. 거장들이 주는 감동이 큰 만큼 좌절도 커진다.

이탈리아 여행 중 르네상스의 거장들을 만났을 때 르누아르가 가졌던 느낌도 비슷했을까. 르네상스 회화는 미술사에서 스펙터클의 정점을 이미 찍어버렸고 조화에 관한한 후세의 그 어떤 화가도 이들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수년간 혁신적인 인상주의의 실험가로 활동해왔던 그는 거장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작업들이 초라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르누아르가 이탈리아로 향한 것은 1881년이었고, 그 해는 르누아르가 처음으로 인상주의전 출품을 거부한 해이기도 하다. 비록 평론가들의 비난을 사고 있던 형편이었지만, 인상주의의 길을 함께 걸어온 동료들과 일부 화상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그간 밟아온 행적을 되짚어본다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르누아르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순간적인 빛을 좇으며 작업을 하다 보니 결국 자신의 캔버스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일종의 공허함에 시달렸던 것이다. 마흔을 바라보고 있던 화가는 르네상스 회화가 주는 영감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깨닫게 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포착한 효과라는 것도 사실 선배 대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진부한 원리였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그들은 추구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었다. 자연광의 풍부한 수혜지 이탈리아에서 이들은 빛의 효과에 주목하여 탁월하게 색을 썼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더해 완벽한 구도와 조화까지 이루었다. 이참에 그는 인상주의와는 결연해 버리고 르네상스 화가들의 기법과 재료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물감에 쓰이는 기름의 농도와 회칠한 벽 위에 그림 그리는 스킬까지 따라해 보았다.

3년간의 연구에 끝에 그가 발표했던 작품은 ‘목욕하는 여인들’이라는 제목의 가로 1.7m, 세로 1.2m에 이르는 작품이었다. 전면에 세 명의 여인이 목욕을 즐기고 있는 누드화인데, 인물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배경이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느껴졌고, 화려한 붓놀림 대신 단정하고 깔끔한 윤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 윤곽선이 살아나기 시작한건 이미 오래였지만, ‘목욕하는 여인들’이라는 작품은 그 중 단연 윤곽선이 뚜렷하다. 인물들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르누아르의 주변에 있었을 법한 현실적인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피부는 진주처럼 빛나고 있었고 신체 부분 부분들도 실제보다 동글동글하게 처리되어 있다.

야심차게 준비했건만 ‘목욕하는 여인들’은 르누아르의 예상을 깨고 엄청난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고갱이 저 멀리 남태평양의 섬을 다녀온 뒤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마당이니, 고리타분한 과거로의 탐험은 일종의 배반 행위처럼 여겨질 법도 했다. 가까운 그의 동료들조차 그가 소신껏 해왔던 실험들을 모두 버리고 팔리는 작품을 하고자 과거로 회귀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 위대한 거장을 두고 또 다시 생계를 거론하는 것은 결코 탐탁지 않은 일이다. 수요자의 기대에 잘 부응 할 줄 알았던 르느아르였기에 그러한 오해를 살만도 했고, 실제로 그의 작품은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식 화가로 입문하기 전에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던 경력도 선입견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르누아르처럼 말년에까지 외로운 실험을 거듭했던 화가도 드물었다. 마흔 넘어 발표한 이 작품을 통해서도 그가 아직 방향설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은 노년이 되어서까지 감내해야 했던 숙제였다. 하지만 ‘목욕하는 여인들’ 이후부터는 진짜 르누아르다운 스타일이 꽃피기 시작했고 주특기인 붓질도 다시 살아났다. 꿈결 같고 아름답지만 그 형태가 견고해 영원히 우리 곁에 두고 싶은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이 그의 손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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