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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문학]아프지 말고 문화중산층이 되자

 

며칠 전 KBS 명견만리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에 대해 고발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길들이기로 망한 사장님들이 방송에 직접 나와서 울분의 눈물도 흘렸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현장을 본 것이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자영업을 시작하면 오히려 빈민층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최근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필자의 가슴 속엔 4년여 전 바다에서 건져내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들이 다시 들어온 심정이다. 그러다가 삼성측이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복제약값을 올리게 해달라는 요구에 관한 1면 기사를 읽었다. 너무나 슬펐다. ‘양화대교’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2005년 주한인도대사관 앞에서 백혈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시위를 했다. 인도가 물질특허를 받아들인다는 소식에 시위대가 모였다. 인도가 물질특허를 인정하면 비싼 의약품들의 복제약을 싸게 만들지 못하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이라는 백혈병 약의 복제약 ‘비낫’을 10%의 가격에 수입해서 쓸 수 있었다. ‘노바티스’는 이윤을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이제 삼성이 그렇게 될 조짐이 보인다. 어떤 약물이 아니면 죽는 환자들이 많을 때 법원에서는 독점적 특허권까지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원래 특허는 돈 많은 강자들로부터 아이디어가 좋은 약자들을 보호하려고 생긴 법인데, 그 특허법이 약한 환자들을 죽이는 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결국 한국의 보령제약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대해 ‘노바티스’와 벌인 고용량 제품 조성물 특허 무효소송에서 승소했고, 인도에서도 ‘글리벡’은 독점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특허독점권은 법적으로 타당해도 전세계적으로 인정 못받는 것이 큰 흐름이다. 특히 약품은 공익적이어야 인정받는다. 그런데 삼성은 원래 싸게 공급해야 할 윤리적 책임이 따르는 복제약의 가격을 더 올리려 하고 있다. 한국의 복제약 가격은 다른 나라 평균보다 이미 20% 이상 비싸다.

정부와 삼성의 만남이 최근 분식회계로 문제가 된 삼성바이오를 돕는 꼼수라는 기사도 보인다. ‘노바티스’는 2006년 개량된 글리벡이 인체에 쉽게 흡수되는 효능이 있으니 특허권을 계속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인도 대법원이 소송을 기각해 원고패소했다. 이 판결은 특허를 줄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발명품에까지 특혜를 주어야하는지를 결정하는 상징적인 판결이었다. 지금은 전세계의 환자들과 활동가들이 연대투쟁을 벌여 공중보건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특허법에 적용시켰다. 이 판결을 전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노바티스와 환자들간의 싸움이 아니라 다국적제약회사의 특허독점에 맞선 전세계 환자와 활동가들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집단 내 지식격차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주장한 경제학자 ‘스티글리츠’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선진국일까? 조선시대 학자 김정국은 책과 거문고의 소유 그리고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을 하고 사는 선비를 ‘문화 중산층’으로 꼽았다. 이는 잉글랜드에서 약자를 두둔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한 것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봉사활동을 하며 공분에 참여하는 것을 중산층의 자격으로 보며, 미국에서도 불법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기준이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환경운동과 봉사활동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것은 공식 기준이 아니라 단지 그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성격의 여론일 것이다.

필자는 유럽과 미국의 기준으로는 중산층이지만 흔히 떠도는 한국 중산층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는 필자는 문화적으로 중산층이라는 생각은 있다. 문화적 중산층이 되면 가장 좋은 점은 자존감이 좋아져서 면역력이 고양되므로 질병 저항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더 가난해질수록 더 아프지 말자. 문화중산층이 되어서 20년 경제위기와 갑질이란 이름의 험한 강을 건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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