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커스맨
/최혜순
뜨거운 법문을 외며
맹렬하게 달리는 8차선 도로 난간 위에서
재주를 부리듯 곡예를 한다
허리에 묵직한 연장 가방을 매달고
다른 쪽 허리엔
아내와 아이들 굴비처럼 엮어
치렁치렁 매달고 있다
관객은 없지만
공중곡예 서커스보다
더 간이 녹는다
난간 위에서
뚝뚝 떨어지는 한낮의
물컹한 슬픔
시적사유와 언어를 통해 시인들은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해 왔음을 위 시를 통해 알 수가 있다. 다양하게 변주되고 확장되는 슬픔의 시학을 ‘난간위에 뚝뚝 떨어지는 한낮의/ 물컹한 슬픔’으로 펼쳐놓는다. 시인은 그 변주와 확장을 통해 ‘슬픔’은 개인적인 아픔과 고독을 견디는 힘인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참여하는 인식의 창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 가장들이 견뎌내고 살아가는 이유를 일상적 언어가 아닌 시적언어로 승화시켰다. ‘뜨거운 법문을 외며// 재주를 부리 듯 곡예를’ 하는 어린 가장은 무거운 연장통을 매달고 다른 옆구리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굴비처럼 엮어/ 치렁치렁 매달고’ 있는, 한낮에 아무것도 덧칠하지 않은 날것의 슬픔을 보면서 시인은 발꿈치를 들어 올리며 간이 녹는 심정이 되고 있다. 이처럼 슬픔을 긍정하면서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시인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이채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