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지식과 양심]이공희 감독의 실험영화 ‘기억의 소리’

 

 

 

며칠 전 영화감독인 지인의 초대로 그녀의 작품 ‘기억의 소리’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이 영화가 ‘2018년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올해의 뉴미디어 대안장편영화’로 선정되었기에 축하와 격려의 의미를 겸한 자리였다.

영화 시작부터 조명된 산속의 전경과 흐르는 강물, 숲속에 위치한 주인공의 저택에 이르기까지의 영상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의 전개가 참으로 난해했고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한국영화사 중에 가장 난해하고 상징체계 역시 복잡한 영화로 기록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서야 비로소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과 작가 메시지의 의도된 상징들에 의미가 가물거리며 어렴풋했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시간 동안 그리고 뒤풀이 자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영화제목 ‘기억의 소리’처럼 그 잔상으로 가득했다. 오랜 시간 고귀한 예술을 순수히 받아들이며 감동하기보다는 흡사 외과의사가 메스를 들고 해부하듯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을 분석하는 작업에 허송세월을 보냈던 필자에게 언젠가부터 잦아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모든 것을 놓은 지 오래지만, 이 또한 습관의 잔재 때문일 것이다.

국내 실험영화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공희 감독은 소설 ‘갇혀진 방’으로 1990년대 초 국내 주요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한 작가이자 영상아티스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녀의 영화는 인간의 존재적 불확실성과 불안 그리고 뚫고 나아가야 하지만 고통과 공포감으로 눈감아버리며 망각의 늪에 빠지길 선택하는 인간의 근원적 모순에 대항한다. 또 빛을 향해 과감하며 잔인하게 몰아버리는 작가정신의 연장선인 듯하며 문학적 묘사의 영상화 시도로 보인다.

한 남자를 갖기 위해 질투하며 갈등하는 두 자매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는 둘 다 영화배우이며, 언니의 자살 이후 그 대역을 맡는 여동생의 심리적 전개과정에서 감독은 많은 상징들을 복잡하게 배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의 무의식터널을 통과할 종교적 사상적 배경설정도 다채롭다. 전생과 현생의 악연으로부터 ‘동굴과 빛’으로 상징된 ‘업보와 해탈’의 불교적 요소를 분명히 볼 수 있으며, 배역을 맡은 여주인공이 영화 속과 밖의 경계를 잃게 하는 장면에서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인 도가적 성격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과정도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점하며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측면도 배경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징과 꽹과리 같은 무속음악이 주인공의 심리현상을 반영하는 도구로 사용된 듯 하고, 특히나 인상 깊었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빗속에서 비틀거리며 길고 흰 무명천을 어깨에 걸치고 질질 끌고 사라지는 장면에서는 전형적인 민속신앙의 예식과도 같았다. 때문에 영화 ‘기억의 소리’는 스스로 페이지를 넘기어 속도를 조정하며 책갈피를 끼우며 쉬었다 다시 읽는 소설책과는 달리 1시간 30분 동안 쏟아내는 메시지를 한 번에 감당하기는 어려움이 따르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난해했던 영화와는 달리,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이공희 감독의 술회와 각오를 들으며 그녀가 그동안 어떤 의지로 무엇을 추구하려 했던가에 대한 이해는 쉽게 다가왔다. 그녀는 제작기획 시작부터 상업성의 영화제작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디지털첨단장비로 편리한 영상제작을 하고 있음에도 35㎜ 필름으로 고집스럽게 제작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다. 제작비 조달의 한계가 생겨서 제작중단을 했다가 다시 충당해 완성하게 된 사연도 들었다. 요즈음 범람하고 있는 가벼운 물질주의 가치관의 우리 사회에 묵직한 무게를 실어 균형을 잡아주는 또 한명의 인격 발견 같았다.

영화감독 이공희는 대표작 ‘적색경보’의 주인공이자 한국현대춤의 개척자였던 고(故) 한상근 선생의 아내이다. 한국 문화예술사에서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전형으로 남을만 하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