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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영감을 안겨준 세기적 뮤즈를 생각하며

 

 

 

뮤즈(Muse)는 춤과 노래, 음악, 연극, 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인에게 재능과 영감을 불어넣는 아홉 여신의 하나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명상하다.’ 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뮤즈는 자신에게 영감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단테의 뮤즈는 베아트리체였다. 단테는 그의 나이 9살에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인 베아트리체를 만나 한눈에 반했다. 그 후 9년 만에 길에서 잠시 스치듯 짧은 만남에도, 단테는 평생 베아트리체를 사모했다. 결혼 할 수 없었던 관계에서 베아트리체는 24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단테는 18살이 되던 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소유하지 못했던 여인에 대한 사랑을 창작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특히 그가 죽기 전 완성한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강렬한 영감을 남긴 대표적 뮤즈로 기억되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첫 만남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내려와 여기서 만나게 되었지요?”라는 말과 함께 꿈결처럼 살로메에게 빠져 들었다. 그가 건넨 이 첫인사는 세인들에게 일파만파로 번져, 꿈같은 연인을 두고 떠올리는 유명한 말이 되었다. 니체는 정말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산에 올랐던 일을 두고 “내 생애 가장 황홀한 꿈이었다”고 뒷날 고백하기도 했다. 살로메가 니체의 청혼을 거절하자 그 충격과 분노를 책속에 풀어놓은 것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니체를 대표하는 역작인 이 작품은 루 살로메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거라 인정했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니체뿐 아니라 릴케, 프로이트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뮤즈로 알려져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22세였던 1897년 뮌헨에서 36세였던 루 살로메를 만나 한 눈에 반한다.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루 살로메는 릴케에게 니체의 사상과 러시아 문학을 소개해주었다. 릴케가 무명 시인이던 4년 동안 살로메는, 깊은 소통으로 위대한 시인이 되는 뮤즈 역할을 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를 살로메는 50세에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제자 타우스크가 살로메를 짝사랑하다 자살했는데도, 그녀에게 연인이며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평생토록 유지했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서재에는 살로메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 장 폴 사르트르의 뮤즈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과 ‘레 망다랭’에서 세밀하고도 깊이 있게 여성의 본질을 탐구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은 지금껏 그녀를 대변한다. 또한 사르트르에게는 대표작 ‘구토’와 ‘자유의 길’을 탄생시켰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의 시인이자 명기였다. 기명은 명월이며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을 읽고 시·서·음률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3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 그때는 단순한 ‘해어화’(解語花: 기생)로 존재했겠지만, 오늘날까지 숭앙받고 있는 것은 그녀의 문인다운 풍모 즉 6수의 시조와 4수의 한시가 있기에 가능하다.

“어뎌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로던가/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졔구태야/보내고 그리난 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병와가곡집>에서 변칙적인 작법을 쓰고 있는 이 ‘졔구태야’의 용법은 특기할 만하다.

황진이도 원래 시 쓰는 재능이 있다고는 하나, 시를 쓰게 한 남 모르는 정인 뮤즈가 있었기에 뛰어난 시를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마음에 품은 사랑이 애절할 때 시적 영감도 상승 작용하여 빛나는 명시를 탄생시키리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세기적인 예술가와 뮤즈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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