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앞에서
/하두자
몸 낮추는 일이사
고개를 숙이면 된다지만
마음을 비워야 들 수 있다는
대흥사 일주문 앞에서
내 삶의 더께 진
마음을 본다
꿈의 반경에서
어둠의 낭하로 내달린 길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 보지만
몸이 무거워,
아직도 문밖에서 서성이며
나, 일주문을 들어서지 못한다
- 하두자 시집 ‘물의 집에 들다’ 중에서
일주문은 절 입구에 있는 산문(山門) 중 첫 번째 문이다. 청정한 도량에 들어서기 전, 속세의 모든 번뇌를 불법이라는 청량수로 깨끗이 씻어내고 참다운 진리의 세계로 향는 상징적 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해남의 천년고찰이며 서산대사가 수도를 했던 대흥사 일주문 앞에서 시인은 삶에 찌들어 있는 자신의 마음을 본다. 일주문을 들어 갈 때는 마음을 비우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사바세계에서 지은 모든 죄를 부처님께 고해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아직 몸속에 남은 번뇌로 인하여 일주문을 들어서질 못한다. 이 시는 자기 고백적인 시라 할 수 있으며 이 시를 읽는 순간 왠지 마음이 청정해 지는 느낌이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