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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백 톤의 질문

백 톤의 질문

/서안나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치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 많은 손을 씻으면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

어떤 생(生)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아주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애월’의 깊은 가을이 성글었다. 뒤를 돌아보면 온통 가을이었을 정도로 그곳은 시인만의 계절이 살아 있고, 또한 생활의 쓸쓸함과 고독의 깊이가 박혀 있는 곳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 찾아온 ‘장소’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기억들이 시인에게 부딪치고, 그때 심장 한 구석에서 불이 켜지듯 생기가 돌며 ‘고백’이 시작되는 것이다.그 문장의 너머에 성근 가을의 ‘애월’이 있다. 그러므로 ‘백 톤의 질문’이란 장소를 향한 시인의 마음-이미지이자 꿈의 목소리들이 아닌가. 시인의 ‘애월’은 유년부터 이어져온 삶과 죽음의 부름이다.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는 아주 사소한 시간이면서도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도 울고 싶은 자들이 실컷 울 수 있는 마음의 가장 은밀한 다락이다. ‘애월’이 있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밤의 짙은 백야가 있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물결처럼 일렁이는 나의 지독한 삶이 있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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