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불륜

                            /오봉옥

내 스스로 머리 위에 땅땅 내려치는 장대비가 되어 너에게 가는 마음 뚝뚝 자르곤 한다 내 스스로 상처 속 군데군데를 헤집고 다니는 병균이 되어 너를 향한 마음에 다시 불을 지르곤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세상천지에 죄 아닌 게 있던가 하고 달려간다 네게로 가는 가시울 너무 높아 핏빛 발자국을 찍다가도 아니지, 이게 아니야 다시 돌아서고 만다 그 홀로 돌아선 발자국 지우고만다 그 흔적 속에 너도 첨벙, 빠져들까봐 그게 또 두려워서.

 

 

 

 

 

오봉옥 시인은 어떤 관념이 구체성을 가졌을 때, 기쁨과 설레임보다는 슬픔과 고통을 더 많이 맛본 것 같다. ‘무엇’을 끝까지 믿고 고통의 무게를 견뎠을, 갈데까지 가서 절망의 눈(目)을 보았을, 접전(接戰)의 시간 끝에서 허무를 잉태했을, 이것을 방황이라고 실패라고 말해야 할까. 그러나 삶은 가혹하여 그를 멱살잡이하듯 끌고 와선 새로운 ‘너’앞에 다시 세워둔다. 습관일까. ‘너를 향한 마음/에 다시 불을 지르곤 한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그러나 이내 ‘아니지, 이게 아니야 번민하며 다시 돌아선다’. 본성과 이성의 줄달음을 치는, 이러한 갈등 속에 타자가 개입하고 있다. 나-나. 타자는 낯선 타자가 아니라 이성적 주체의 타자이다. 주체는 본성을 은폐하고 이성을 지향하고자 한다. 시 ‘불륜’을 시집 제목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와 함께 해석하면 시인이 걸어온 길이 더욱 환하게 보인다. ‘개인’의 서정보다는 ‘민중’의 서정을 앞에 두었고, 그것을 위해 자신과 벼린 시간들이 길었던, 자기 결단에 대한 일종에 자책이 내포되어 있다. 유독 ‘반성’의 태도를 많이 보이는 시편들 속에서, 그는 스스로 ‘뚝뚝 자르고’ 스스로 ‘병균이 되어’야 하는 길을 선택한다. 사회적 자아를 버리고 개인적 자아로 돌아서고자 하는데, 그의 마음(內面)이 많이 상(傷)했다. 시어 장대비, 상처, 병균, 핏빛 발자국은 이성적 삶을 지향하는 주체의 참회기다. 주체의 전환지점을 알리는 지경(地警)에서, 그의 관념은 두려움의 단계에 진입했다. 오봉옥 시인의 두려움은, 이성적 주체로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알 수 없음’에 기인하고 있다. /박소원 시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