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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내 눈이 흐린 것인지 세상이 흐린 것인지 대기는 재로 가득 찬 듯 뿌옇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우리의 명을 재촉한다는 기사와 미세먼지 재난문자가 오늘을 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올 한 해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온 희뿌연 이 불청객은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는다. 불평만이 어지러이 난무하고 대책요구만 무성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건 바로 우리의 반성이다. 그저 누군가가 대책을 만들어 하루빨리 뿌연 것을 싹 거두어 가기를 바라기만 한다. 하지만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결의에 찬 진정성 있는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 반성이 빠진 대책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환경문제가 붉어질 때마다 자신의 책임 있는 역할은 배제한다. 여기에는 이런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편히 살 테니 네가 좀 불편하게 살아주면 좋겠다. 돈이 필요해? 내가 좀 낼게.’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이 꼼수는 잘 사는 나라일수록 더하다. 자연을 해친 장본인이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가? 꼼수를 부리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솔직해지자. 우린 자기기만에 빠져있다. 내가 만든 먼지가 아니고 내가 고통을 당하는 먼지일 뿐이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실은 내가 일으킨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이름을 떨쳤던 도로시 파커(1893~1967)는 그가 사는 동안의 희뿌연 생의 이력이 그의 능력을 가린다. 영화 ‘스타 탄생’의 시나리오를 썼고, 풍자와 비평이 날카로웠던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도 교류했다. 그러나 도로시 파커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3번의 이혼, 알코올 중독, 우울증, 자살 기도 등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세상은 그를 만나면 그 이력부터 질문하고 그것부터 궁금해했다. 물론 도로시 파커의 잘못이 없다고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능력과 생각보다 그 뿌연 먼지들에 대해 세상은 더 말하고 더 궁금해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에도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세상의 아니 우리의 반성이 빠졌다. 어느 날 방송 인터뷰에서 묘비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묘비에 무엇을 쓰고 싶냐는 질문에 도로시 파커는 이렇게 대답한다.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산을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르틴 루터 킹 목사에게 남기고 떠났다. 먼지를 일으킨 반성, 묘비에까지 쓸 정도의 반성을 상기해 볼 때이다.

저물어가는 2018년에 미세먼지와 싸우는 우리는 또 어떤 존재란 말인가. 우리가 일으킨 먼지 때문에 우리 후손이 고통받고,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며, 종국에는 자신까지 해치는 이 사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마음의 먼지를 닦아야 세상의 먼지를 닦을 수 있다. 기만에서 벗어나 세상이 주는 멋진 풍요와 편리함에 대해 되돌아보자.

“먼지를 일으킨 당신 때문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후손이 우리의 묘비명에 온통 이렇게 써 놓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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