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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연례행사

 

 

 

해가 짧아지고 하루하루 수은주가 떨어지면서 겨울이 왔다. 첫눈이 탐스럽게 내려 온 세상을 설국으로 바꾸어 놓더니 동지팥죽과 손수 따온 도토리로 만든 귀한 묵까지 집으로 왔다.

우리 집은 겨울이면 노인 회관만큼 어르신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며칠을 두고 드나드시는 분들은 많은데 갑자기 몇 시간째 잠잠하게 방이 비워진다. 지난 장날 조그만 전단지를 들고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보이고 우리 집에도 발길이 뜸하던 신발이 보이고 한 동안 들리지 않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 여닫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대문소리가 요란하다. 이쯤 되면 짐작 가는 일이 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에서 가까운 상가에 합기도 도장이 이사를 가고 비어 있는 건물이 있다. 그 쪽으로 어르신들 행렬이 이어지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며 지나가신다.

손에는 다 같이 알록달록한 상자가 들려 있다. 속칭 약장사라고 하는 장사꾼들이 온갖 감언이설과 노래와 춤으로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면서 어르신들 쌈짓돈을 노리고 찾아 온 것이다.

익숙한 인기척을 신호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고 잠시 머뭇거리시며 가게 안을 살피시더니 어머니께서 들어오신다. 내일은 계란을 준다고 하시며 계란 사진이 인쇄된 조그만 스티커를 보여주신다.

그런데 표정이 밝지 않다. 주저하시며 말씀을 꺼내신다. 출입문 곁에 부처가 그려진 커다란 그림이 붙어 있고 그 앞에 자리를 깔고 함을 놓았다. 거기에 시주를 하고 절을 하면 복을 받아서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식구들도 아프지 않고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분들이 돈을 넣고 절을 하는데 나는 그냥 왔다고 하시며 여간 불편해 하시지 않는다.

선물이라고 받아온 물건과 남들은 다 돈을 내는데 그냥 나온 일이 당연히 내야할 돈을 떼어먹은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시를 하고 계신 것으로 비춘다. 추운데 그런데 다니지 마시라고 하고 마트에 가서 계란 많이 사 올 테니 집에 계시라고 안심시켜 드려도 자꾸 걱정을 하신다.

나도 마음이 쓰여 조금 전에 소리가 나던 곳으로 가보니 어머니께서도 티슈 묶음이 놓여있다. 마치 아이들이 친구들끼리 보는 불량만화를 감춰 둔 것을 발견한 느낌이다. 돈도 안 내고 절도 안 하시고 온 것 때문에 걱정도 되시고 원래 무속이나 절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집에 들여오지 못하고 밖에 몰래 두고 오신 것으로 짐작 된다.

때만 되면 시골에 찾아와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친절을 가장한 바가지상혼으로 폭리를 취하는 집단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이제는 특정 종교를 사칭해서 바가지 상혼에 갈취까지 하고 있는 실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르신들 건강과 여가 선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과 나아가서 나이가 들면 학교에 가고 군에 입대 하는 것처럼 어르신들도 일정한 연세가 되면 하루를 소일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겁이 많으셔서 안 가신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당장 내일부터 구경 가자고 찾아오시는 친구분들 성화를 어떻게 감당하실지 그것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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