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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동칼럼]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국격(國格)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는 선거문화다. 선거야말로 한 사회집단의 의식과 정치문화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거 풍경은 어떠한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살풍경을 떠올리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요즘 국회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놓고 여야 간에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5차방정식인지는 몰라도 현행 300석을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가를 갖고 갑론을박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얻는 득표를 연동형으로 배분하는 방식인데, 정작 만드는 의원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심지어는 “국민은 다 알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건 아니다. 뭐가 구려서 인가, 무슨 사정이 똬리를 틀고 있기에 그럴까. 국민은 알 필요가 있고 알아야 마땅하다. 국민이 정치인을 뽑는 선거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선거제 개정안이 의원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는 지적이다. 어느 의원은 당 의총에서 “나 정도 머리를 가진 사람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분명 문제는 있다. 득표율에 관계없이 지역구에서 1등만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 선거 때마다 이익을 얻는 정당은 다르지만, 표의 가치가 왜곡되는 현상은 늘 일어난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남편과 정치인의 공통점을 말하는 인터넷 유머의 우스갯소리다. ‘내 손으로 골랐지만 참 싫다. 뒤통수를 친다. 안에서는 싸우고 밖에서는 착한 척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아직도 내가 사랑하는 줄 착각한다. 내 말은 죽어라 안 듣고 자기 맘 대로하다가 패가망신한다’

JP는 생전에 “정치는 속이 텅 빈 허업(虛業)”이란 말을 남겼다. 30대에 쿠데타를 주도했고 권력의 최정점에 다가갔다가 추락했으며 DJP의 공동정권 제2인자로 잠시 재기한 후에 권력의 온갖 얼굴을 다 본 뒤의 의미 깊은 말이다.

국회라고 하면 국민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새해 예산안을 법정기한 안에 처리한 적이 거의 없는 국회, 어느 정권에서나 법안의 단독처리가 빈번한 국회, 첨예한 사안이 대두되면 여당과 야당이 뒤엉켜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국회, 오죽하면 어느 해에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을 담은 모습을 ‘올해의 사진’에 선정했을 정도다.

이젠 우리 정치 판도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국민들이 정치혐오와 불신을 갖지 않게 투명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나고 보면 허업일 뿐이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유머가 떠돌지 않게 해야 한다.

정치인의 필수품은 마구 끌어들여야 하니 갈퀴가 필요하고 진흙탕 싸움을 잘 벌이니 장화가, 연줄을 잡아야 하니 실타래가, 말하는 입술은 번드르르해야 하니 참기름이, 평소엔 목에 깁스를 해야 하니 석고(石膏)가, 선거철에는 사르르 녹일 듯이 사탕발림을 해야 하니 솜사탕이, 거짓말의 명수이니 오리발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저 웃어넘기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공감(共感)되는 구석이 있기에 그렇다.

선거제도 개편은 바로 정치제도 개편이다. 민심이 반영되는 제도개편이어야 바람직하다.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부패 없는 국회, 밥값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태도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매듭지어야 한다. 정당의 유불리(有不利)가 아닌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말 자체가 어렵다. 쉽게 풀어서 얘기하면 ‘표심(票心) 그대로 의석 배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하자는 얘기다. 표심 왜곡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된 것인데, 계산법이 국민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다.

말은 잠재적 성향과 의식을 읽어내는 단서다. 정치인의 내뱉은 말의 궤적을 좇아가면 그의 정치적 소신과 입장을 파악할 수 있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감시자요, 배심원이다. 정치인들이 한 번 뱉은 자신의 정치적 발언은 역사 속에서 결코 은닉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말의 문화다. 생각이 말을 규율한다. 말이 순화될 때 정치의 선진화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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