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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松시선]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다산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쉰을 넘긴지 이미 오래인데 이룬 것 없이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반생을 생각하면 다산 정약용과 강진이 떠오른다.

꽃샘추위가 유난했던 지난 주말 강진을 여행했다. 지난해 가을, 다산 정약용 해배 200주년을 기념해 강진에서 남양주까지 해배길 걷기행사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강진군문화관광재단의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2019 올해의 관광도시’에 선정된 강진은 ‘남도답사1번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행지로서 갖출 것을 두루 갖추고 있다. 강진만과 월출산의 아름다운 풍광, 무위사와 백련사를 비롯한 즐비한 문화유적, 결코 잊을 수 없는 남도의 맛이 어우러진 곳이기에 강진에 들어서면 늘 가슴이 설렌다.

1박2일의 일정은 강진만 생태공원을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강진만을 뒤덮은 갈대숲은 철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관이다. 백련사 동백숲을 걸으며 바닥을 붉게 물들인 동백꽃에 취해 있을 때 비바람이 몰아쳤다. 비를 피해 다산초당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우박까지 쏟아졌다. 매년 찾아오지만 꽃샘추위야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예년 기온을 회복할 것이기에.

인생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1801년 11월 하순, 다산 정약용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강진읍내에 들어섰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나라에서 엄금하는 사학에 물든 죄인이기 때문이다.

다산의 후반생은 혹독한 한겨울에 시작됐다. 규장각 초계문신에 뽑혀 정조와 학문을 논하고, 화성을 건설할 때 거중기를 설계했으며, 암행어사와 고을 수령으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800년 정조의 죽음과 함께 다산의 봄날은 지나갔다. 고향집 ‘여유당’에서 숨죽이며 지냈으나 광풍에 휩쓸리고 말았다. 오갈 데 없는 다산을 받아 준 사람은 강진 동문에서 밥을 파는 주모였다. 다산이 대범하고 지혜로운 주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해 겨울부터 봄이 지나도록 다산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는 오직 주모 밖에 없었다. 다산은 흑산도에 있는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모의 지혜를 이렇게 찬탄하고 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가 이렇게 밥 파는 노인에게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무렵 다산은 자신이 거처하는 방을 사의재라 불렀다. 사의란 생각, 용모, 말, 행동 네 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튿날 사의재 옆 한옥 마당에서 ‘땡큐 주모’라는 마당극을 관람했다. 마당극의 중심인물은 유배 초기 절망하는 다산과 이런 다산에게 방을 제공해 주고 격려하여 학문에 정진하게 하는 주모, 다산을 흠모하는 주모의 딸, 그리고 다산의 애제자 황상이다.

배우들 모두 지역민들로 채웠지만 열정은 전문 집단에 못지않다.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은 분명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 강진에 대한 사랑이리라. 사의재에서 시작된 다산의 후반생은 교육과 저술로 채워졌다. 500권에 이르는 다산의 저술은 강진에서 키운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룩된 것이다.

강진에서 후반생을 시작한 다산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今得暇矣].” 다산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때를 학문에 매진할 기회로 삼았다. 강진에서 보낸 18년 세월 동안 복숭아뼈에 세 번 구멍이 나도록 우직하게 저술에 힘을 쏟아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권의 저서를 남겼다.

봄은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찬란한 봄이 우리 곁에 머무는 동안 잠시 만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며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집이나 일터에서 두세 시간 떨어진 곳이라야 마음이 평안하다고 한다. 이번 봄에는 다산의 정신이 살아 있는 남양주와 수원, 강진을 종단하는 가족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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