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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향유로서의 예술, 자본으로서의 예술

 

 

 

최근 가장 뜨거운 예술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뱅크시(Banksy)다. 영국의 그래피티작가, 일명 거리의 예술가지만 정작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는 만인에게 작품을 평등하게 보여주는 대신 자신은 꽁꽁 숨겼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예술계는 엄청난 쇼크에 빠졌었다. 그의 그림 ‘소녀와 풍선’이 소더비 경매에 나왔는데 15억원에 팔렸다. 여기까지는 예술계든 화가에게든 훈훈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 낙찰되는 순간 ‘소녀와 풍선’은 산산조각이 났다. 뱅크시가 작품을 만들 때 경매에 나올 것을 미리 대비해 액자에 파쇄기를 장착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예술가는 없었다. 자기 작품을 자기 스스로 계획하여 공개적으로 파손시키다니! 그는 예술계에 도전했으며, 예술의 소유 그리고 자본을 비웃었다. 예술계의 이단아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틀에 갇힌 관습과 사상 그리고 권위를 조롱한다. 그리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선물한다. 그는 가난한 동네 골목에 벽화를 그려 그림의 공공성을 예술 감성의 평등적 향유를 그리고 고체화된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의 해체를 꿈꾼다.

문화자본은 문화적 취향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지식, 소양, 매너, 예술, 교육 등 개인이 갖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 중에서 화폐가치로 따지기 쉽지 않은 것들을 지칭한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접하는 음악, 영화, 문학, 스포츠 등 누리는 모든 것을 문화적 가치로 자본화하면 바로 개인의 문화자본이 된다.

이러한 문화자본은 문화예술과 연관된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특정 사람에게 좀 더 많이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문화자본은 물질자본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드러나기 때문에 흔히 졸부라 부르는 사람처럼 어느 날 문득 이 문화자본이 갑작스럽게 몸에 익는 것은 아니다.

문화자본을 가늠하는 데에는 개인의 인격과 행동, 태도, 가치관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물질자본은 과장할 수 있지만 문화자본은 꾸밀 수 없다. 물론 문화자본도 자본이니만큼 돈과 무관하지 않다. 일상에서 예술을 가까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돈이 들기 마련이고 돈이 있어야 몸에 밴 문화적 인간이 된다.

그렇다고 물질이 풍요롭다고 이런 문화적 취향을 다 갖는 것은 아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모가 가능한 한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기려는 태도, 그것이 중요하다. 미술 교과서라도 그림을 보고 관심을 보여주거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경청하고 즐기고 나누려할 때 자녀는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적 환경을 유산처럼 물려받는다.

뱅크시는 상업화된 그림, 재산처럼 물려주는 문화자본에 도전했다. 2013년엔 뉴욕 센트럴파크 근처 길거리에서 자신의 그림을 팔았다. 최소 2만 5천 달러는 족히 넘을 그의 그림들을 단돈 5~60달러에 팔았는데 하루 종일 8점을 팔았다고 한다. 우리 집에 뱅크시 그림이 걸린다면? 그날 그림을 사간 사람의 즐거움을 상상해보라.

지난 3월에는 일본 곳곳에서 뱅크시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여러 벽화가 발견되어 술렁였고 흥분했다. 우리나라에도 혹시? 아니 우리나라에도 있는 앞으로 탄생할 제2, 제3의 뱅크시를 무시하거나 예술계에서 배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겨우내 숨죽였던 꽃망울들이 그 혹독함을 이기고 터지는 봄이다. 꽃의 향연이다. 축제의 계절이고 감탄의 연속이다. 그런데 개나리, 장미, 매화, 벚꽃 등 우리가 잘 아는 그 예쁜 꽃들 말고도 땅바닥에 붙어 오물오물 올라오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에게도 탄성을 선물하자. 아무도 보살피지 않은 그 설움까지 겪은 그들에게 우리의 새로운 문화자본을 보여주자.

부디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을 향유하는 여유를 스스로 앗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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