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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노인이 많은 나라

 

 

 

남문쪽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연로하신 분들이 젊은이들의 분주한 시간을 피해 다니시는 것을 자주 본다. 통증이 있어 보이는 관절을 힘들어 하며 느릿하게 걷고 시장에서 산 무거운 물건을 한보따리씩 들고 교통카드를 재빨리 꺼내지 못해 우물쭈물하며 정류장에서의 시간을 지체시키기도 하고 힘없는 팔다리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 있기라도 하노라면 몸을 이기지 못해 넘어져 다칠까 노심초사다. 중풍이나 뇌경색으로 한 쪽 팔다리가 불편하기라도 하면 승하차에 자칫 위험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어디든 다닐 자유와 권리를 폄훼하거나 지탄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이 젊은이로만 구성돼 살아가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에 대한 불편하고 공평하지 않은 시설과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속도만큼 적응해내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부족한 배려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라는 잘못된 편견의 씨앗이 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한다.

사회는 획일화된 구성원만으로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한사람의 삶에도 한가지의 방식만이 적용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장치해 놓은 다양한 계층의 보이지 않는 계급 중 나이가 주는 계급도 서열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나이가 많은 것만으로 낙오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필수요건은 무엇이 있을까.

자식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 스스로 고려장이 되길 바란 늙은 부모를 지금은 노인이 되어가는 입장에서 돌아볼 교훈으로 삼는다.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미덕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아무리 인정하지 않고 기를 다하여 노력한다 해도 시간에 한계가 있을 노년은 그 찬란한 생산력의 권력에 비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생산의 가치를 충분하게 사회에 헌납한 휴면인력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 항거 한번 하지 못한 채 쓰러져 갈 날만 소극적으로 기다리며 공허의 시간을 보낸다. 다른 나라도 발전해 가지만 우리나라의 발전 속도는 가히 그네들의 모범이 될 정도로 빠르다.

어머니세대의 손빨래가 세탁과 탈수가 이단으로 분리된 형태의 세탁기로 처음 만나지며 이젠 통돌이의 세련됨과 건조기의 아름다운 혁명까지 지켜봤다. 앞으로 또 얼마만한 변화를 보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소용돌이 속을 두려움을 안고 따라가야 한다.

국가나 사회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쉽지도 그리고 안락하지도 않은 배려에 섣부르게 만족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노인이 가진 경험과 연륜이 젊은이의 빠른 순응력과 건강한 생기와 경쟁할 순 없겠지만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시대에 적응하려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잘사는 것이 목표였지만 정말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살아왔던 전 세대를 이으며 자신의 더 멋진 삶의 형태를 더 뚜렷하게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내기가 힘듦을 시인한다. 그저 소진되어가는 시간에 적어도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는 노년이 될 순 없다는 생각에 위축도 된다.

젊음과 노인의 경계를 가를 수 없는 다양함이 존재하지만 마음의 젊음은 차치하고 객관적 경계는 있다. 스스로 마음을 젊은이라 생각한다 하여도 젊은이와 동격은 아니다.

좋은 음식섭취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그렇게 많아진 노인들에게 양보해야 할 자리는 점점 늘어나고 피곤한 젊은이는 자신들의 피로를 하소연 하지 못한 채 무거움과 또 다른 불공평함을 짊어져야 한다.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짐을 덜어주고 싶은 우리는 많아졌지만 이미 소수이다.

남아있는 삶에 새로운 의미를 찾아 그 의미가 또 다른 삶의 목적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청춘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년아! 우리는 너희의 젊음을 견디고 치열하게 걸어 여기에 이르렀다. 너희에게도 언젠가는 노년이 오는 것을 인지하라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으리니 우린 다만 새로이 빛나기 위해 휴면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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