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자화상
[생활에세이]자화상
  • 경기신문
  • 승인 2019.04.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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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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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시인
이상남 시인

벚꽃 만발한 4월이 달리고 있다. 내리 천 어귀를 개나리로 물들이고, 풋풋한 봄바람 흩뿌리며 다닥다닥 제비꽃으로 잔디밭을 살찌운다. 방 안을 전전하던 노인들을 불러내고 이내 봄비에 벚꽃 잎 훌훌 털어낼 4월. 자전거를 몰고 나온 어린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을 태우고 길 건너 아산호로 둥둥 떠가는 저 새털구름. 이런 풍경들 또한 4월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흔히 자화상이라 하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물론 그림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소신이나 신념으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그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주말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하는 예술의전당서예박물관을 갔었다.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히 개최되는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 自畵像-나를 보다’라는 전시회.

그곳에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서화, 서예,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각 개인의 삶이 드러나는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자화상 또한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사의 친필 글씨와 친일파의 대표인물인 이완용의 친필 글씨가 나란히 걸려 있어 그 또한 한 때 우리나라의 자화상이란 걸 부인할 수가 없었다. 또한 전시회를 보고 돌아 나오는 마지막에 걸려 있는 ‘참새’라는 제목의 그림 한 장. 그 그림은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나뭇가지 위 참새 한 마리가 꾹 다문 입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의 끝. 그 바닥에 다섯 마리의 참새가 앉아 있다. 네 마리 참새는 각자의 시선을 하고 있지만 유난히 한 마리 참새가 나무 위 참새를 향해 부리를 한껏 벌리고 짖어대는 모습. 남쪽에 네 명의 자녀와 아내를 두고 월북한 작가가 죽기 2년 전에 그린 작품이라 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아내의 서러웠을 마음을 그린 듯도 하여 가슴 뭉클한 이 한 편의 그림. 그 또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가슴 아픈 우리나라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었다.

고난 중에도 소신껏 자신의 삶을 그려 후대에 귀감을 보여준 역사 속 인물들을 보고 돌아 나오며 나의 자화상 또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만 급급해서 삶의 중간 중간을 제대로 점검해 보지 못한 나날들. 자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소신을 펼치지 못하고 움츠렸던 시간들. 자식들에게도 칭찬보다 채찍을 더 들이댔던 것 같은 반성. 늦은 나이에 다시 한 번 뜨거워지는 애국심까지.

우면산 등지고 벚꽃 만발한 길을 걸으며,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역사에 비할 데는 아니지만 거리를 메우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 이웃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얻는다. 저 티 나지 않은 서민들의 노력이야말로 건강한 사회, 나라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거름이 아닐까도 싶다.

한 차례 후드득 날아가는 꽃잎, 한 무리 가족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지나 향긋한 쑥국과 달래간장, 김 몇 장, 한 숟갈 된장에 자박자박 무쳐낼 냉이나물 저녁상을 차릴 생각에까지 이르러서야 빙그레 웃어보는 나. ‘하루가 건강해야 이어지는 다음날도 행복이다’라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잡으며 서둘러 집을 향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달리고 여전히 나는 건강한 자화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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