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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이야기]모도가 봄이다!

 

山(산)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公器(공기)까지도 봄 公器(공기)이다. 그 부들업고 다사한 봄바람에 섯기어 가장 流暢(유창)하고 가장 平和(평화)로운 노래소리가 獨立門(독립문) 全體(전체)를 싸고 돈다. 그것은. 이 글은 1920년 6월 ‘개벽’ 창간호에 실린 소파 방정환의 소설 ‘유범(流帆)’에 실린 시(詩)다.

지난 3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전국 사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며칠 동안 미세먼지로 가득하던 봄은 모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파란 얼굴을 드러냈다. 노트북과 책 그리고 가방을 싣고 일찌감치 한양길에 올랐다. 도로는 한적했고 마음은 편안하고 봄바람은 향긋하다. 도착할 무렵 언덕길을 오르는데 포실포실한 벚꽃들이 손을 흔들며 ‘어서 오세요’ 하며 필자를 맞이해 주었다.

2시간 동안의 강연을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담당 선생님이 2층 전시장을 안내해 주었다. 전시장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모도가 봄이다 : 방정환과 한국 어린이 운동’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모도’는 현대어로 ‘모두’이다.

‘모도가 봄이다!’는 3·1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인 ‘유범’ 속에 있는 시인데, 독립을 암시하는 노래라는 이유로 검열에서 삭제된 부분이다. 3·1운동과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오늘의 어린이에게 ‘모두의 봄’으로 연결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3·1운동과 방정환 선생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 운동을 전개해 ‘어린이’라는 말을 정착시키고 아동잡지를 발행한 아동 문학가로만 알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독립운동가로서의 행적을 모르고 있지만 그분은 ‘어린이를 잘 키우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며 어린이를 위한 사업을 독립운동과 연계한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시장에는 각양각색의 볼거리들이 풍성했다. 벽을 따라 이어진 연표 위에는 방정환 선생의 일대기가 펼쳐졌다. 선을 따라 선생의 발자취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한 쪽에는 책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흑백으로 나왔던 옛 책들과 다채로운 색깔의 삽화가 있는 책으로 다시 출판한 책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곳곳에는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놀이도 마련돼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벽면에 빼곡히 붙어있는 글이었다. 구구절절 애국정신과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마치 이 시대 어른들에게 당부하듯 간곡함이 있었다.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속생각이 자라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주십시오. 희망을 위해, 내일을 위해 다 같이 어린이를 키웁시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방정환 선생이 하신 아름다운 꽃말이다. 필자는 정성껏 공책에 적으며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에 실린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떠올렸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서두르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정성을 들여야 좋은 글이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방정환 선생도 일제 강점기 빼앗긴 들에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듯이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에 정성을 다하셨다. 그렇기에 소중한 가치와 정신이 꽃 같은 말과 글로 피어난 것이다.

나무에 꽃들이 피고 있다. 나무와 꽃들은 서로 비교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본연의 향기를 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미세먼지처럼 상대방 시야를 가리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는 말과 글로 조화로운 꽃을 피워야 한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꽃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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