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길을 잃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막다른 길. 산을 하나 뭉갠 자리에 흙길이 두세 개 갈라져 있다. 내비게이션에게 이 사태를 추궁한다. 어쩐지 편도 1차선 도로만 고집부리더니 사람도 없고 건물도 없이 공사 터만 닦아놓은 곳이라니.

정신을 차려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간다.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의 시디를 틀어도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경쾌한 음률인데 이런 곳에서 들으니 식은 커피처럼 씁쓸하다. 한적한 시골길. 낯선 곳에서 맞닥뜨리는 혼자라는 막막함이 나를 집어삼킨다. 결국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머리를 묻는다.

내비게이션은 가끔 이렇게 뒤통수를 쳤다. 빠른 길을 알려준다면서 주행거리를 늘려놓기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도착지도 빙빙 돌게 했다. ‘이건 아니지’하다가 ‘믿지 말아야 했는데’로 끝나곤 했다.

신뢰도 그런 식으로 깨어졌다. ‘설마’하는 사이, 가까운 관계부터 금이 갔다. 그럴 리 없다고 믿은 사람이 마음은 가장 먼 곳에 있었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할퀴고 간 자리는 더디게 아물고 흉도 졌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안내가 느려지거나 새로 뚫린 길 대신 옛길을 알려주고 엉뚱한 곳으로 인도했다. 막다른 길이나 일방통행로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패러다임만 가지고는 현재를 주행할 수 없다.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빠르게 변하는 물결에 따라 흘러갈 수 있다.

‘큰 물고기보다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작은 물고기가 더 강하다’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 포럼 설립자의 말처럼 나도 수시로 성능을 점검하고 나를 업데이트 해야겠다. 오늘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말이다.

내비게이션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했다. 편하다는 이유로 몇 번 갔던 길도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그동안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자만했지만 내비게이션 없는 초행길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자연히 지리적인 공감각이 퇴화됐다.

비단 내비게이션뿐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을 멸시하면서도 그 기득권의 수혜자로서 그것을 이용하고 의지해 왔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삶. 부모에게, 자식에게, 배우자에게, 혹은 알코올이나 도박에 기대는 삶은 심리적 자립심을 퇴화시켜 스스로를 허물어버리고 말겠지.

종종 길을 헤맸다. 살면서 오늘처럼 막다른 길이 나올 때, 생각지 못한 복병과 만날 때 나는 길을 찾기보다 미아처럼 우는 일이 먼저였다.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길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탓을 했다. 그 길이 아니라면 돌아서 나오면 될 것을.

여기에 오기까지 몇 가지 길. 시도하지 않고 지레 겁먹은 길. 포장도로인 줄 알았는데 진흙투성이였고 침몰하는 줄 알면서도 발목을 빼지 못한 길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걸어왔던 길도 있었다. 그 길을 읊으면 어느 이름에서 마음이 멈추었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을 잃었다. 세상에 채이고 넘어질 때 마음을 기대던 곳. 하지만 나의 내비게이션은 당신의 지번을 검색할 수 없다고 했다. 행복의 기착지를 검색하면 어디쯤에 있던 이름.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이미 산화한 섬이고 수몰 된 지역이고 되돌아갈 수 없는 폐역이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