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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칸(Cannes)의 봉준호, 한국의 칸

 

지난 25일 제72회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아 모두를 기쁘게 했다. 이는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에서 최초의 사건으로 어쩌다 이뤄진 것은 아니다. 봉감독 개인적으로는 ‘괴물(2006)’ ‘도쿄!(2008)’ ‘마더(2009)’ ‘옥자(2017)’에 이어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이뤄낸 것이지만 혼자만의 도전이 아니었다.

앞서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4)’와 ‘박쥐(2009),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등 여러 번의 도전이 있었다. 또 칸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3대 영화제라는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의 수많은 도전도 바탕이 됐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받은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서부터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2012)’까지 수많은 도전과 수상의 역사가 존재한다. 봉감독의 수상에 대해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기 일처럼 기뻐했을 것이다. 혹시 봉감독과 원수진 일이 있거나 심각한 경쟁관계여서 ‘배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손흥민이 골을 넣었을 때나 류현진이 완봉승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도 부러워할지언정 원수질 일은 없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문화영역에서는 정치·경제·군사 영역과 달리 극한대립이나 치킨게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의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글로벌 문화’는 다른 문화를 억압하는 ‘문화제국주의’만 아니라면 긍정적이다.

문화는 정치·경제·군사와 달리 선의의 경쟁과 상생의 영역

그런데 여기에 정치나 사회적 대립이 개입하면 그런 특성이 무너지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다이빙 벨’ 상영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인데, 일방적 주장만 있어 정치적 편향성을 띤다는 비판이 있었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 대표가 상영을 반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로서의 가치에 의심이 들 수 있고, 상영을 결정한 영화제 관계자의 수준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당시 박근혜 정부가 압력을 넣어 상영을 막으려 했고, 관계공무원을 징계하고 영화제에 대한 예산 지원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들을 했다는 사실에 이르면 이미 영화제나 문화영역을 넘어 정치판이 되고 만 것이다. 문화발전에는 다양성이 필수적 전제이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느낌을 인정할 수 있어야 문화국가를 얘기할 수 있다.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순수한 예술적 입장에서의 논쟁이어야 한다. 물론 정부는 다양한 문화정책을 통해 문화계를 지원한다. 현실적으로 일률적 지원은 어려우므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문재인 정부의 체크리스트 논쟁에 이르면 이미 정치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지혜가 정부에게 필요하다.

세계문화를 주도하려면 대립과 간섭을 넘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우리는 왜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가? 우리도 그런 영화제를 키워서 세계 영화계를 주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미국과 중국이 경제와 군사적으로 패권을 다투는 틈새에 끼인 우리나라는 문화역량을 더 넓혀가야 한다. 일본과 우리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멀어졌어도 일본의 젊은이들은 K-Pop을 즐기고, 우리는 일본의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를 응원하는 것이 실상이다.

우리도 영국 축구의 프리미어리그, 미국 야구의 메이저리그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영화 100년’은 1919년 10월 27일 상영된 연쇄극(연극무대에 스크린 영사를 결합한 공연)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를 기점으로 한다. 세계영화의 역사는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의 출발도 20여년밖에 늦지 않은 것이다.

이제라도 세계 문화계를 주도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수다. 이 둘은 보완관계에 있으므로 문화융성의 시기를 앞당기려면 투자를 더 대규모로 하면 된다. 하지만 단순히 돈과 시간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의 개입과 횡포 그리고 변덕을 막아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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