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불태울 수 없던 제암리 민초들 불멸의 애국심

1919년 3·1운동 이후 사건 다뤄
일본군, 만세시위 보복으로 학살
선교사 눈으로 왜곡된 진실 파헤쳐
‘조국독립’ 지킨 민초들의 삶 표현
3·1운동 100주년 맞아 감동 선사

 

 

 

끌 수 없는 불꽃 (경기도립극단)

“마을에서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꽃이 밤하늘을 밝혔으며 곡식 타는 냄새, 시체 타는 냄새가 밤새 바람에 실려 왔고 서까래가 내려앉고 기둥이 쿵쿵 넘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기도립극단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연극 ‘끌 수 없는 불꽃’을 선보였다.

‘끌 수 없는 불꽃’은 100년 전인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3·1운동 발발 이후 경기도 화성(당시 수원군) 발안 장날 만세 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은 관객들에게 역사적 왜곡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경각심을 전달했다.

공연은 극의 화자라 할 수 있는 ‘프랭크윌리엄 스코필드’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이어 미국인 조선 부영사 ‘커티스’, A.P통신 서울 특파원 ‘테일러’, 조선 출생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까지 세 사람이 나타나고 이들을 중심으로 극은 전개된다.

‘전동례’를 비롯한 제암리 사건의 희생자들과 제암리 출신인 조선인 순사보 ‘조희창’을 포함한 일본군들의 시각을 그들에게 차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대립이다.

이러한 병렬구조식 나레이티브의 연출은 관객들이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현장검증의 시각으로 바로 보게 해 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며 각자 판단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면서 거짓이 어떻게 진실이 될 수도 있는지 메시지를 암시한다.

또 공연은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선보이며 재미를 더했다. 극의 마지막 쯤 일본 총독이 제암리 마을을 찾아가 위선적인 태도로 희생자들에게 악수를 건네는데, 여기서 ‘노경태’와 ‘전동례’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노경태는 제암리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일본군에 맞서면서도 끝내 총독의 악수는 거절하지 못했다.

반면 전동례는 일본군의 무력 앞에서 굽히지 않으면서 총독의 악수 역시 거절했다.

노경태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고 전동례는 기개나 의지가 굳센 인물이었다.

전동례의 굳건한 태도는 색다른 방식으로도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조선이 없는데, 조선인은 있어?”라고 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부정하고 같은 마을 사람들의 학살에 일조한 조희창은 끝까지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전동례는 마지막쯤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하고, ‘조희창 씨’가 아닌 ‘희창 아저씨’라 부르며 물 한잔을 부탁한다.

조희창은 그녀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그녀는 그가 건넨 물을 다 마신 후에 고맙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전동례가 조희창에게 일종의 자괴감과 회의감을 들게 해 관객들에게 묘한 짜릿함을 안겼다.

공연은 제암리 학살 사건을 조명하는데 충분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역사적 왜곡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는 것이다. ‘끌 수 없는 불꽃’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킨 공연이었다.

/최인규기자 choiinkou@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