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공 민주평화상’의 나비효과를 기대한다
[사설]‘해공 민주평화상’의 나비효과를 기대한다
  • 경기신문
  • 승인 2019.07.11 18:44
  • 댓글 0
  •   17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회 해공(海公) 민주평화상 시상식이 지난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렸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이 수상했다. 문의장은 민주주의 수호와 적극적인 의정활동으로 국회의 견제기능 강화를 통해 정치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의정발전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전 장관은 남북 평화무드 기반 조성과 한반도 평화포럼 창립을 주도해 평화증진과 남북 교류협력 확대를 위해 노력한 점이 공적으로 인정됐다. 안타깝게도 글로벌리더 부문은 ‘수상자 없음’이다.

광주시(廣州市)가 지역출신 독립운동가이며 현대 정치사의 거목인 해공 신익희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다니 놀랍다. 지자체가 기획하고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니 더욱 그렇다. 시는 이 상을 통해 해공 선생의 핵심가치를 선양하고 매년 해공기념주간을 선정해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재조명 하기 위한 학술대회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첫번째 해공 주간은 지난 8일 시작, 14일까지 시청과 남한산성 아트홀 일대에서 진행된다. ▲사진 및 유묵(遺墨) 전시 ▲탄신제 ▲학술대회 ▲해공을 해설하다 ▲토크쇼 등이 주 내용이다.

해공 선생은 1894년 7월 11일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 운동 직후부터 26년동안 해외에서 임시정부 수립 등을 주도했다. 1944년 5월 임시정부의 연립내각 성립 때 내무부장에 선임됐으며 충칭에서 광복을 맞았다. 광복 이후 1945년 12월 1일 홍진·조소앙 등과 함께 임정요인의 제2차 환국 때 귀국했다. 1946년 국민대학을 설립했으며 ‘자유신문’을 발행했다. 1948년 5월 경기도 광주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까지 이 지역의 정치적 대부로 추앙받고 있으며 임종성 국회의원 등이 맥을 잇고 있다. 초대 국회 부의장에 이어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1956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 선거운동을 하던 도중 5월 5일 뇌일혈로 급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서로의 주장이 다를수록, 타협하고 절충해서 타협점을 찾던가,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일처리를 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라는 선생의 일갈은 아직도 유효하다. 특히, ‘내 이익에만 매진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광주시를 본받아 다른 지자체들도 지역 인물을 발굴, 지속가능한 선양사업으로 가꾸는 건 어떨까. 개발을 명목으로 애꿎은 산(山)들만 훼손하지말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