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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하쿠나 마타타(잘 될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면 길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볼 것입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을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자기가 주체로서 행동하지 않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탄자니아 추장이 했다는 말이다. 그 뜻이 오묘하여 이해가 잘 안 되나 아프리카에서 잠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수긍할 것이다.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 변두리의 길옆 풀밭에는 원주민들이 할 일 없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비스듬히 엎드려 자고 있다. 탄자니아 추장 말처럼 그들에게 시간은 과연 흐르지 않는 것일까?

나이로비는 적도 부근의 평원으로 해발 1천700여 미터라서 일 년 내내 우리나라의 9월 중순 같은 기온이다. 중고차 매연의 시내를 벗어나면, 맑은 공기에 각종 수목에는 예쁜 꽃이 피어 새들이 노래한다. 쟁반보다도 큰 달이 손에 잡힐 것 같고, 초롱초롱한 별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듯하여 ‘아, 참으로 좋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이고 인구도 많다. 빈민가를 제외한 대부분 주택은 숲 속에 있어서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고급 주택은 단독주택이 대부분이나 근래에는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다. 고급주택은 2, 3층으로 되어있고 계단이 안에 있어서 한 가족만 생활하게 돼있다. 그러나 서민 집은 흙벽돌로 대강 지어서 허접하기 그지없다.

내가 거주하는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순식간에 물이 거실로 밀려왔다. 몹시 놀라 물이 밀려오는 쪽으로 달려가니 안방 화장실 변기에 연결된 파이프가 빠져서 거센 물줄기가 뻗치고 있었다. 물이 안방 문지방을 넘어 금세 건넌방을 돌아 거실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한 달 전에도 그곳에서 물이 새 관리인이 수리비를 받고 고친 것이란다.

정문에는 여느 곳처럼 녹슨 철문이 닫혀있고 그 옆에 경비실이 있다. 경비는 경찰 같은 정복 차림으로 2인 1조로 24시간 근무한다. 별도로 관리인과 정비사, 청소담당이 있다. 경비들과 위층의 한국인 등 일곱 명이 두 시간 넘게 물을 퍼내고 정리하는 황당한 일이 80평대의 고급 빌라에서 벌어진 것이다.

화장실과 샤워실 사이에는 높은 칸막이가 있고 화장실에 당연히 있어야 할 배수구가 없다. 관리인은 오지도 않고 바로 보내겠다던 기술자는 다음날 오후에야 연장 하나만 달랑 들고 왔다. 그리고 부품을 사야 한다며 돈을 받아서 어슬렁거리며 두 번이나 들락거렸다. 이게 아프리카이며, 아프리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반문한 추장의 말이 통하는 곳이 아프리카다.

걸리버 여행기의 어느 소인국은 구두 굽을 높게 하느냐 낮게 하느냐에 따라 두 정당이 5년 동안 대립하며 식사도 같이 하지 않는다. 첨단을 달리는 현시대에 우리 정치인들도 크게 두 편으로 나뉘어 상대를 보수와 진보라 칭하며 다툰다. 보수는 자신들만이 애국자요, 반대파는 좌파 종북이라며 적으로 몬다. 반면에 진보는 보수가 오랫동안 기득권을 행사하면서 쌓고 싼 폐단을 청산한다며 공격한다.

이는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훗날, 온 누리에 평화가 왔을 때 감정에 얽매어 싸우던 지금의 역사를 돌아보는 후손들은 걸리버 여행기를 읽는 기분이 아닐지.

삶은 인식의 차이다. 어쩌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즐겨 쓰는 아무 문제없이 다 잘 될 것이라는 뜻의 ‘하쿠나 마타타’에 맞춰 느긋하게 생활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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