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슬칼럼]분노의 독 사과
[김구슬칼럼]분노의 독 사과
  • 경기신문
  • 승인 2019.09.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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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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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대학교 명예교수
협성대학교 명예교수

 

흔히 극작가로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154편의 소네트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T.S. 엘리엇은 단테와 셰익스피어를 비교하면서 단테가 인간 영혼의 깊이와 높이를 노래한 시인이라면 셰익스피어는 인간 정서의 폭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문학의 불멸성은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성을 탁월하게 표현한 데 있다.

내 애인이 자기가 진실하다고 맹세하면 / 난 그녀를 믿어요,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 그녀가 나를 세상물정모르는 / 젊은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 내가 한창때가 지난 나이임을 그녀도 알건만 / 나를 젊은이로 생각하기를 헛되이 바라면서, / 나는 그녀의 거짓말을 믿습니다. / 둘 다 뻔한 진실을 감추고 있지요. / 하지만 왜 그녀는 부정한 여자라고 말하지 않는지요? / 그리고 나는 왜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지요? / 오, 사랑의 본질은 믿는 체 하는 데 있고, / 성숙한 사랑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 법이지요. / 그러기에 나는 그녀에게 그녀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 그리고 서로의 결점에 대해 거짓말로 서로를 위로합니다.

- 소네트 138, ‘내 애인이 자신은 진실하다고 맹세하면’

우리는 가끔 거짓인 줄 알면서도 믿는 척 한다. 이 소네트의 나이 많은 남자와 부정한 젊은 여자의 경우처럼 서로의 약점을 모른 체하고 거짓말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화자는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한다. 이 경우 최악의 상황은 서로 마음의 상처를 확인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의도적이고 사악한 거짓은 어떨까? 그 종말은 자멸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독 나무’에서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나는 내 친구에게 화가 났다,/ 내 분노를 말했더니 분노가 사라졌다. // 나는 내 적(敵)에게 화가 났다,/ 내 분노를 말하지 않았더니 분노가 자라났다. // 나는 두려워하며 밤낮으로/ 내 눈물로 분노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미소로, 부드러운 기만의 술책으로/ 분노에 햇빛을 비춰주었다. // 그러자 분노는 밤낮으로 자라나,/ 마침내 빛나는 사과 하나를 맺었다, // 그러자 내 적은 반짝이는 사과를 보고/ 그것이 내 것인 줄 알았다. // 그리곤 밤이 별빛을 가렸을 때/ 내 정원으로 숨어 들었다, //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기뻤다/ 내 적이 나무 아래 뻗어있는 것을 보았으니.

- ‘독 나무’, (A Poison Tree 전문)

이 시는 억압된 분노의 파괴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금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이 시를 이렇게 읽고 싶어진다. 철저하게 본심을 감추고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이데올로그는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적으로 간주하고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다. 물론 그들은 목적을 실현할 때까지 절대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적은 위험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고 적을 향한 분노는 그들 내면에 숨겨진 어두운 마성의 발현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친절한 가면을 쓰고 거짓 미소를 지으며 악어의 눈물로 키워낸 탐스런 열매는 종국에는 자신을 파괴하게 될 치명적인 독을 내재하고 있다. 몰래 독 사과를 따먹고 뻗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적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거짓은 스스로가 만든 분노의 씨앗으로 자라나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독 사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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