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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이서린

이미 저녁, 섬의 한 끝에 닿았지요 짙은 화장의 중년 여자가 시중드는 선창가 횟집, 바다 빛의 술잔에선 비릿한 향이 나고 바람에 덜컹이는 손때 묻은 창 너머 침울한 얼굴의 어부가 지나가더군요 목까지 차 오른 취기, 흩어지는 담배연기 사이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횟집을 나서자 해무처럼 몰려오는 어둠에 우리는 잠시 휘청거렸을 거예요 만조를 이룬 검은 바다, 등대가 있는지 멀리 불빛 깜박이고 돌아온 어선들이 일렬로 정박한 선착장은 곧게 뻗은 돛대들로 장엄하였구요 그 돛대 끝에 매달린 달이 바다에 투신하고 쿨럭이며 뒤척이는 내나로도의 밤을 낡은 생애들이 지나고 있거든요- 시집, ‘저녁의 내부’ 중에서

 

 

 

 

만조를 이룬 검은 바다를 지나 섬의 한 끝에서, 목까지 취기 오른 눈으로 달을 따라간다. 흔들리는 건 내가 아니라 달빛이고 휘청거리는 건 내 가슴이 아니라 그의 눈빛이다. 오늘 따라 짙은 화장의 선창가 횟집 아낙과 술잔과 손때 묻은 창은 왜 바람이 자신을 흔드는지 모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휘청거려지는 이 마음이 끝 간 데 모르고 날뛴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점점 낡아가는 생애가 계속해서 지나가고 일렬로 정박한 선착장의 곧게 뻗은 돛대들이 왜 장엄한지도 모를 것이다. 다만, 그 돛대 끝에 걸린 달이 투신하고 마침내 밤이 끝나도록 내가 왜 혼자 술잔을 비우는지도 모를 것이다. 취기 어린 눈으로 내가 멀리까지 따라간 건 네가 아니라는 사실도 전혀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덮을수록 선명해지는, 마실수록 또렷해지는 두통이 네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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