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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동칼럼]쓴소리 하는 원로가 있으면 나라가 밝다

 

 

 

 

 

입동이 지났다. 겨울 문턱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소식만 들려온다면 좋으련만 아픈 소식이 더 넘쳐난다. 겨울은 없는 서민들에게 손 시린 계절이다. 사회는 있는 이들보다 없는 이들이 더 많다. 그만큼 따뜻한 손길을 뻗어야 할 복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경제 10대국(大國)에 진입했다고 하나 아직도 주변에 어려운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살만하다고 압력에 굴복하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압박한지 92일만의 일이다. 자동차, 반도체 같은 산업은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대한민국 농업은 아직도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농업인들이 불끈했다. 당연한 일이다. 24년 간 유지해온 ‘개도국 지위’는 한국 농업의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농업보조금이나 주요 농축산물 관세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향후 협상이 진행되면서 미국산 농축산물의 추가적인 수입 요구가 우려돼 이래저래 농업분야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농업인단체는 한국농정의 굴욕 외교사라면서 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비자들인 국민 대다수에겐 먹거리 안정성에 대한 위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무슨 위기만 오면 모면하고 보자는 ‘사탕발림’ 식으로 대처했다.

요즘 우리나라는 좌우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이를 헤쳐 나가려면 온 국민이 긍지를 여길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 구심점이 바로 쓴소리를 가감(加減)없이 하는 원로들이 돼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밝아진다. 예로부터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원로들이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의 미덕이 있었다. 원로들은 편안한 노후를 선택하기보다는 국민을 위해 직언(直言)을 해서 나라의 위기를 잠재우곤 했다. 역사가 이를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왕조 519년 긴 역사를 유지했던 이유도 원로들의 충심어린 상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릴 줄 모르는 원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용기에 대한 스페인 속담이다.

원로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일컫는다.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세대다. 오죽하면 ‘원로는 법외(法外)기관’이라고 할 정도가 아닌가. 법조목보다 원로의 일침(一針)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여느 추리소설처럼 대가(大家)와의 만남은 늘 끝에 가서 중요한 가르침을 얻는다. 원로와의 만남도 이와 같다. 원로는 기억력은 현저히 줄었어도 상상력은 더 끓고 있을 듯하다.

누구나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죽음이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 와 있다는 느낌으로 산다. 생물은 언젠가 죽는 것이고 사실 죽기 때문에 생물인 것이다. “영원한 삶이란 한없이 게으르게 살고 싶다는 심정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황동규 시인은 말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세상의 모든 색채를 만든다. 어둠 속에 빛이 있어야 한다.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도 빛과 어둠이 함께 만든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것도 결국 우리 마음속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많다. 감사하지 못하면 분노가 생긴다. 미래를 보지 못한다.

대부분 원로는 견딤의 자세로 오늘을 살아간다. 인생의 고통에 대한 가장 올바른 자세는 극복의 자세가 아니라 성실한 인내의 자세다.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나 고통의 늪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그 고통의 늪을 허우적허우적 건너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원로는 대중보다 한발 앞서 문제를 인식하고 안목과 용기를 갖고 대책을 제시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전쟁을 벌이는 수단은 무력만이 아니다. 경제 정책도 무력만큼 상대방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일본이 수출절차간소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 않은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시장경제의 실종, 이대로라면 희망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피의자 인권도 보호돼야 하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누가 무슨 혐의로 체포됐고 수사권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언론은 감시할 의무가 있다.” 문재완 헌법학회장의 쓴소리다.

신하가 낙향하면 의자와 지팡이를 하사했다. 왕이 내린 의자에 앉아 경륜과 지혜를 빌려달라는 의미였다. 곱씹어 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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