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은행나무

 

 

 

가을비가 내린다. 이 비 또한 그치고 나면 겨울이 까치발을 들고 다가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구름이 지퍼를 여는 것은 계절을 밀어내거나 앞당기기 위한 과정인가보다.

거리에 나서면 노랗게나 붉게 물든 가로수가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데 가을을 즐기기도 전에 쏟아져 내리니 아쉽다. 나무가 잎을 버리는 것인지 잎이 나무를 떠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다른 계절을 준비하기 위함이며 나무들의 질서 일게다.

매장 앞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든 가을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다닥다닥 붙은 열매와 함께 바람이 불 때마다 잘 여문 은행을 떨군다.

행인들은 발 디딜 곳 없이 쏟아진 은행을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밟히고 터져 여기저기 뭉개진 은행에서 나는 악취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더 지저분하고 악취 또한 심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 붙은 냄새는 참으로 난감하다. 고객보다 먼저 냄새가 들어오고 한번 방문한 냄새는 잘 나가지도 않으니 애를 먹는다.

내게 제일 좋아하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함 없이 은행나무라고 할 것이다. 봄에 새순이 올라올 때 그 청순함과 가련함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은행나무에 기대어 있으면 푸른 물을 허공으로 퍼 올리는 나무의 숨 가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좋다. 그 푸르디푸른 잎과 노랗게 물든 은행잎까지 정감이 가지만 요즘은 은행잎을 밟으며 첫사랑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기엔 너무 지쳤다.

내가 은행나무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쏟아지는 열매와 그 열매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나 자신도 모순이지만 가을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에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만 가로수로 심던지 아니면 가로수를 다를 수종으로 교체하던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한 아름이 넘는 나무를 베어내는 것도 아깝고 그렇다고 가으내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것도 힘들다. 어쩌다 한번 밟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출근하면 따라 들어오는 냄새와 매일 쓸어도 매일 떨어져 쌓이고 밟혀 터지는 은행과의 전쟁에 지쳤다.

차라리 행정당국에서 한 몫에 털어 가면 좋겠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은가 보다. 하기야 은행나무가 이곳에 있는 것만도 아니고 거리 곳곳에 심겨져 있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겠다싶다.

일 년을 보면 곡식을 심고 십 년을 내다보면 나무를 심고 백년을 위해서는 사람을 심으라 했다. 가로수는 한번 심으면 도시계획이나 큰 이유 없이는 그대로 적게는 몇 년부터 수십 년까지 한자리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가로수의 수종을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신중히 결정해야하는지를 새삼 느낀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선정된 것은 우리나라의 기후조건에 견뎌낼 수 있으며 질소와 아황산가스 납 성분 등 공기정화는 물론 열섬효과 제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니 정말 대단한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넓은 잎으로 그늘을 내어 주다가 가을이면 노랗게 거리를 물들여주니 이 또한 아름다움이다.

이런 좋은 조건의 은행나무를 수나무만 싶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으로 오늘도 열심히 매장 앞 인도를 쓸고 또 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