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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잘 지내나요? 그럼 됐습니다”

 

 

 

 

 

한동안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면 가슴이 설레였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의미가 사라지자 무감(無感)해졌다. 한때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소중했던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순간 고독해지고 먹먹함이 밀려온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이 시작됐다. OECD국가의 평균 자살률 인구 10만명당 11.5명의 2배 이상인 24.7명. 주춤했던 자살률이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다시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가 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올해는 연이은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모방자살인 베르테르효과로 이어져 우리사회의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연예인, 이들은 왜 자살을 하는 걸까? 악풀, 우울증, 정체성혼란 등 다양한 요인이 있으나 필자는 이들에게 ‘의미의 상실’은 자살행동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연예인 자살이나 사망 뉴스를 접할 때 마다 필자는 떠오는 얼굴 둘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과 김광석이다. 이들은 필자에게 한때 의미 있는 친구들이었다. 지금은 대학에 몸을 담고 있지만 오랜 기간 방송작가로 활동을 했던 필자는 다양한 가수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가수가 신해철이다. 필자가 졸업을 하고 새내기 작가일 때 만났던 신해철은 당시 대학생으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타고 라디오 심야 음악프로의 엠씨가 되었고 필자는 그 프로의 작가였다. 그는 누나, 누나하면서 방송이 끝나면 지금은 없어진 검정 르망차를 끌고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인생에 대해 종알종알 개똥철학을 늘어놨다. 어찌나 장난끼 가득하고 언변이 좋았던지 매번 그의 말장난에 넘어갔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사람, 필자와 나이도 같고 아이도 동갑이어서 서로 공감하는 이야기가 많았던 친구, 가수 김광석이다. 녹화 전날까지 밝게 인터뷰를 했건만 다음날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허망했었다. 친하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 마음이 퍼렇게 될 때까지 눈치를 못 챘을까? 함께 있었을 때 ‘너 참 재밌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마웠다’라는 말이라도 해줄걸. ‘힘들구나’ 무슨 걱정이 있느냐 왜 한 마디 못 건넸을까? 이 말 한마디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하지 못했을까? 그래서였을까? 필자가 지금도 연예인을 상담하고 연예인자살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의미는 이러한 마음의 빚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상담에서도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이 있다.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수용소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로고테라피 의미치료이다. 그의 책속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수용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매일처럼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크리스마스나 그 해 마지막 달에는 점점 줄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간이 지나면 급격하게 사망자 숫자는 늘어났다. 왜 그런걸까? 그가 관찰한 결과,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스스로 의미있는 날을 마음속에 그리고 그때까지는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을 때는 그 안에서 버틸 수 있었지만 좌절되는 순간 살아야하는 의미가 살아지자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프랭클은 말했다. 죽음의 문턱으로 내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의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고.. 의미가 없는 삶은 바로 죽은 삶이라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의미가 되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떠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 의미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일이 아무 의미가 없을 때 그 사람은 살았지만 죽은 사람이다. 자신의 삶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채 부초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해를 정리해본다. 그리고 한 때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했던 얼굴을 떠올려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나요? 그럼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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