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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신문기사를 보면 SSM 마켓에 대한 말들이 많다. 대기업에서 경영하는 대형마켓이라 골목 상점들이 다 죽는다고 야단들이다.

이런 세상에 아직도 재래식 구멍가게가 있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간판도 후줄근하고 가게 모색도 낮고 초라하다.

뿌연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에 옴츠리고 앉은 50대의 주인 남자가 보인다. 그는 오늘도 탁자 위에 소주병을 올리고 앉았다.

나는 가계 문을 밀치고 들어가, “아저씨, 라면 어디 있어요?” 하니 사내는 팔을 들어 어둑한 가게 한쪽 구석을 가리킨다.

나는 눈에 띄는 라면 몇 봉지와 껌 한 통을 들고 주인 앞으로 다가갔다. 술 취한 주인 남자의 역겨운 체취가 콧구멍을 감싼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급히 껌 껍질을 뜯어낸다. 그리고는 뜯은 종이를 눈앞의 빈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참이었다.

“어허. 그건 거기 들어갈 쓰레기가 아니여.”

갑자기 주인 남자가 정색을 하고 한마디 한다.

“이거 쓰레기통 아니에요?”

“보면 몰러? 그건 빈 통이여.”

“그럼 쓰레기통은요?”

주인 남자가 또 팔을 들어 가리킨다.

“저 문 앞에 있잖여.”

그러고 보니 큼직한 쓰레기통이 출입문 앞에 너더분하게 앉아 있다.

“그럼 그 빈 통은 뭐에요?”

“이거? 이건 마음통이여.”

“마음통이요?”

“그려. 난 아침마다 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 마음통에다 쓰레기부터 버려.”

나는 이상해서 또 물었다.

“뭔 쓰레기인데요?”

“뭔 쓰레긴. 내 마음의 쓰레기지.”

사내가 또 히벌죽 웃으며 콧구멍을 후빈다.

“마음의 쓰레기라뇨?”

내 말에 사내는 고개를 모로 돌리며 대답을 한다.

“아줌씬 마음의 쓰레기가 없소?”

“그게 뭔데요?”

그러자 주인 남자는 난감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씨, 그게 뭐랄까? 죙일 이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있으면 온갖 인간들이 다 들어와. 돈에 시달리는 눔, 사랑에 굶주린 눔, 돈독에 찌든 인간, 각양각색 인간들이 다 들어온다니까. 사람은 누구나 이승의 바닥에서 시름에 갇혀 살고 있어. 맨정신으로 세상 보기가 두렵단 말이여. 그러다 보니 술도 마시고, 이렇게 정신이 맹한 가운데 세상을 보는 거여. 그래도 시름이 덮쳐. 술로도 못 덮는 시름이 있단 말일씨.”

“그건 어떻게 하세요?”

사내가 빈 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려. 이게 내 마음속의 쓰레기통이요. 말하자면…. 새벽마다 가게에 들어오면 젤 먼저 하는 게 마음속의 쓰레기를 이 빈 통에 버리는 일이여. 집 나간 내 여편네, 가출한 딸년, 은행융자에 이달 월세허며…. 한두 가지가 아니여. 그리고 또 백팔번뇌가 덮쳐. 이건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소, 잉. 그러니 이 빈 통은 늘 쓰레기들로 넘쳐나요.”

나는 할 말을 잊고 돈을 치렀다. 물건을 챙겨 들고 급히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게 안의 그 사내가 궁금해졌다. 나는 뿌연 유리문 안에 갇힌 그를 뒤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는 빈 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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