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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국 끓여 먹을지라도

 

 

 


예식장에 갔다. 예식을 보고 식사도 맛있게 하고 나왔다. 신부와 신랑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데 나올 때 꽃다발까지 안겨준다. 이 무슨 횡재인가 싶다. 요즘 일부 예식장에서는 예식에 쓰인 꽃을 포장까지 해서 하객들에게 나눠준다. 꽃다발을 받아들고 보니 축의금을 더 내고 싶어진다. 기분까지 활짝 핀다.

‘꽃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것보다 ‘꽃을 싫어하세요?’라고 묻는 것이 더 쉽다. 다들 꽃을 좋아한다. 몇몇 예외를 뺀다면. 안 좋아하는 사람을 두 사람을 알고 있다. 어떤 플로리스트는 꽃다발 대신 돈으로 달라고 했다. 이해한다. 매일 만지는 것이 꽃이니까.

다른 한 명에게 꽃을 반기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배추라면 김치라도 담그지 꽃은 먹을 수도 없잖아”

먹어봤자 배도 안 부르다는 꽃. 그가 식물을 나누는 기준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꽃. 두 가지다. 아마도 그의 아내는 평생 장미꽃 한 다발 받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장미를 좋아한다. 화려하기도 하거니와 여러 품종, 다양한 색을 가졌다. 제각각 다르면서 하나같이 예쁘다. 부드러운 꽃잎의 질감이 좋고 시선을 끄는 크기가 좋고 겹겹으로 쌓인 신비함이 좋다. 게다가 향 또한 매력적이다. 가시가 있어 성가시기는 하지만 장미가 가진 매력을 가리지는 못한다.

장미나 리시안사스, 라넌클러스, 다알리아 같은 크고 화려한 꽃이 좋다. 식사라면 메인메뉴이며 영화라면 주연배우다. 누룽지 보다는 밥그릇에 하얗게 윤기 흐르는 밥이 좋다. 김밥이라면 꽁지 부분보다 제일 가운데 부분이 좋다. 생선은 가운데 토막을, 고기도 안심을 좋아한다. 옷도 커다란 꽃무늬가 들어간 것을 좋아한다. 프릴이나 레이스가 달린 것, 강렬한 색이면 더 좋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울리지 않아서 단색의 심플한 옷을 선택한다. 대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속옷만큼은 화려하고 과감한 것을 고른다.

어떤 사람은 자잘하고 애잔한 꽃을 좋아한다. 안개나 미스티, 스토크, 스타티스 같은 작은 꽃이다. 난을 고를 때에도 가녀린 잎에 하얀색이나 보라색 같은 꽃을 선택한다. 메인을 받쳐주는 역할의 꽃이다. 식사로 치면 에피타이저나 곁요리이고 영화에서는 조연배우다.

이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옷도 잔잔한 꽃무늬가 들어가거나 튀지 않는 차분한 색상의 옷을 좋아할 것 같다. 메인보다는 디저트를 좋아하고 누룽지나 김밥 꽁지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고기보다는 채소류를 좋아할 것 같다. 신발도 가방도 무채색의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할 것이다. 분명 소박하고 정이 많을 것 같다. 조용하고 꼼꼼하게 제 할일 다하면서 세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꽃으로 성격을 재단한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A·B·O식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진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주 거리가 멀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떻든 꽃은 사람을 환하게 하는, 마음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귀금속이나 명품처럼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니 경제적이다.

러시아에 갔을 때, 꽃다발을 든 남자들을 심심찮게 보았다. 기차역에서 꽃다발을 들고 시계를 쳐다보던 남자, 길거리에서 신문지에 싼 꽃다발을 들고 가는 남자들이 있었다. 연인에게 줄 꽃다발이었다. 까만 머리의 무표정한 얼굴이 썩 매력적이지 않은 러시아 남자가 꽃을 들고 연인을 기다리는 모습은 의외였다. 멋지게 보였다. 내가 기차에서 내릴 때 꽃다발을 들고 날 기다리는 남자가 있다면, 꽃다발을 내밀며 마음을 건네주는 남자가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뛸까. 러시아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진즉에 간파한 것 같다.

꽃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주는 일도 기쁜 일이다. 올해를 돌아보며 작은 소망 하나 보탠다. 내년에는 꽃을 주는 일도, 받는 일도 많았으면 좋겠다. 너무 많아서 국 끓여 먹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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