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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오늘 제소리]조선 장수들의 의리 (下)

 

 

 

 

 

부하들의 존경과 사랑도 함께 받아



조선은 문인의 나라였다. 따라서 무인의 졸기(卒記)가 ‘실록’에 실리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완의 경우는 달랐다. ‘실록’에 그의 졸기가 죽기 전에 올린 상소문과 함께 실려 있다. 그가 훈련대장을 거쳐 우의정까지 역임했기 때문이다.



“삼가 살피건대, 이완은 쇠퇴한 세상에 불쑥 솟아오른 하나의 인재였다. 인조 때부터 군사를 잘 처리한다고 이름이 났었다. 효종 초기에 구인후를 대신해 훈련대장이 되었는데 사나운 병사들이 굴복하여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였다.”

-우의정 이완 졸기 중에서



“이날 도성의 모든 백성들과 각 병영의 군교들이 모두 달려와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류혁연의 행장 중에서



경신환국(1680)으로 역모에 몰려 류혁연이 사약을 받았을 때의 모습이다. 류혁연은 10년 뒤 복권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처럼 이완과 류혁연 모두 부하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장수였다.

그렇다면 장수로서의 이완과 류혁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두 사람 모두 병법에 해박하고 기사(騎射)를 비롯한 무예 실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완은 자신이 타는 말의 먹이를 손수 줄 정도로 성품이 소탈했다고 한다. 우연히 이것을 본 사람이 대장 체면이 손상되지 않느냐고 하자 “내가 입신양명한 것은 이 말 때문이다. 생사를 같이해야 할 사이인데 손수 먹이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류혁연에 관한 일화도 흥미롭다. 어느 날 효종이 장수들에게 은쟁반 하나를 보냈는데 아무런 지시도 없고 다만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 네 글자가 쓰여 있을 뿐이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웅성대고 있을 때 문득 류혁연이 검을 뽑아 은쟁반을 내리쳤다. 칼에 맞아 동강난 곳은 ‘북(北)’자가 쓰인 부분이었다. 일설에는 이 일을 계기로 북벌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화에서 살펴 본 것처럼 두 사람의 성품은 대비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 이완은 말과 행동이 매우 신중한 반면 류혁연은 과감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부하를 지휘하는 방식은 이와 달랐다. 이완은 군사들에게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엄하게 다스렸고, 류혁연은 인정을 베풀고 너그러움으로 감싸주는 스타일이었다.

사격 시험에서 상을 받은 자가 이완의 군사보다류혁연의 군사가 다섯 배나 많았다. 이완이 “은혜가 다하면 오만해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가?”라며 충고하자 류혁연은 “장수가 군졸을 부리는 방법이 옛날과 지금이 각기 달라 인정이 소홀해지면 마음이 떠나 유사시에 쓸모가 없어질까 염려가 될 따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시대적 과제 해결하는 리더



이완과 류혁연, 두 사람은 성품도 다르고 당파도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이해나 당파에 휩쓸리지 않고 군인의 본분에 충실하여 임진 병자 두 번의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와 군대를 복구한 난세의 대장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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