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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속임의 미학

 

 

 

 

 

팬터마임에 뛰어난 한 청년이 살았다.

그는 어느 날 고릴라 복장을 하고 동물원을 찾아갔다. 그가 고릴라 우리 앞에서 고릴라 행세를 하자, 철창 안의 고릴라가 야단이 났다. 이를 본 관람객들이 고릴라 우리로 몰려들었다. 그가 그렇게 며칠 동안 고릴라 앞에서 고릴라 행세를 하자 혈압이 오른 진짜 고릴라가 그만 심장마비에 걸려 죽어 버렸다.

고릴라 우리가 비자 동물원장은 관람객이 줄어들 것이 걱정됐다. 그래서 고릴라 행세를 하는 청년을 불러 말했다.

“새 고릴라가 올 동안 자네가 철창 속에 들어가 고릴라 노릇을 좀 해 주게. 진짜 고릴라처럼 보이게 해야 하네.”

그날부터 청년은 철창에 갇혀 고릴라 행세를 하게 됐다. 그가 온갖 재주로 고릴라 노릇을 하자, 그때까지 가장 인기 있던 옆집 사자 우리 앞의 관람객들이 모두 고릴라 우리 앞으로 몰려들었다.

청년은 가까이 있는 사자를 놀려주기 위해 철창을 타고 옆 사자 우리의 천장에 가서 온갖 재주를 부렸다. 그를 밑에서 보고 있던 사자가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청년도 어느 날 실수를 해서 그만 사자 우리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관람객들이 놀라서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성난 사자가 바닥에 나뒹구는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청년은 ‘사람 살려라!’ 하고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청년의 몸 앞까지 달려온 사자가 앞발로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청년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병신아, 조용히 해! 너만 가짜냐? 나도 가짜다.”

사실, 사람 사는 사회는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 사회다. 다들 ‘척’을 한다. 많이 가진 척, 많이 아는 척, 가방끈이 긴 척, 그렇게 해야 출세를 하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속인다. 직장 동료들 간에도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척하지만, 알고 보면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 삶의 처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욕망을 품지만, 그 욕망을 충족하는 자는 없다. 그걸 위해 사람은 저마다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도의 문제이지, 누구나 속고 속이며 살아간다. 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도 속인다. 마음속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고, 원기가 왕성할 때와 약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늘 고정된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이는 못난 대로 위선을 한다.

그래서 노자는 ‘속임의 미학’을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상인은 좋은 물건을 깊이 감추어 놓고 마치 없는 것처럼 속인다.”하고, 군자는 “훌륭한 덕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동은 마치 어리석은 자처럼 속인다.”고 했다.

그럼 소인은 어떠한가? 잘난 척을 한다. 대인 행세를 한다. 각박한 이 세상에 솔직하고 순수하게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결코 생존하기가 어렵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얼마간 속임의 미학에 맞춰야 한다. 적당히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 처신할 수 있는 자가 출세도 하고 재물도 얻는다.

오직 도덕군자로 이 길만이 제 길이라고 외치며 외고집을 부린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진심을 감추고 상황에 맞게 사는 것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다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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